▲반밧사 버스 스탠드 주변 거리.
송성영
간단하게 세면을 마치고 숙소 주인에게 자물쇠를 요청해 문단속을 해놓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바나나 몇 개와 과자로 끼니를 때웠다. 기운을 챙겨 내일 국경을 넘으려면 뭔가를 먹어야 한다. 지친 몸으로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번거롭다. 식당 딸린 숙소였기에 부러 식당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모모나 자오민 됩니까?""그런 음식은 없습니다.""이 부근에 그거 먹을 만한 식당 없습니까?""모릅니다."
매몰차게 딱 잘라 대답하는 주인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자신의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히말라야 근처의 국경도시 다르줄라 사람들과는 달리 반밧사의 국경도시 사람들은 숙소만큼이나 불친절하다. 숙소를 잡기 전, 거리의 상점에서 토마토를 샀는데 주인이 골라준 토마토들이 대부분 상해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도 비싼 편이다.
숙소 식당을 빠져나와 버스 스탠드 주변의 적당한 식당에서 적당히 끼니를 때우고 어둔 밤거리를 나섰다. 몇몇 외국인 배낭객들이 눈에 띈다. 버스 스탠드 주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그 큰 눈을 끔벅거리며 쪼그려 앉아 있거나 큼직한 가방을 베고 누워 있다. 밤을 여기서 보낼 모양이다. 하지만 이들은 거지들이 아니다.
내가 값싼 숙소를 찾아 시장거리를 헤매고 다닐 때 사람들 앞에 손을 내미는 거지들을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세상 어디든 부유한 사람이 있으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적선을 바라며 손을 내밀 수 없는 곳은 살만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매정한 곳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버스 스탠드에서 한뎃잠을 청하고 있는 저들은 창고나 다름없는 낡은 숙소에서조차 몸을 누일 수 없는 일용노동자들일 것이었다. 불평등한 계급이 자본으로 나눠지는 자본주의 국가가 그렇듯이 인도에서의 불평등한 카스트 제도는 이제 자본으로 그 계급이 나눠지고 있는 듯싶다.
비록 지린내 나는 허름한 숙소지만 내겐 누울 공간이 있다.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는 저들에게는 자본주의의 미천한 계급장조차 없다. 하지만 내게는 언제든지 먹고 마시고 잠들 수 있는 현금카드, 자본의 계급장이 있다. 잠들 수 있는 나만의 공간과 비워져 있는 배까지 채웠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지덕지한 일인가.
쥐벼룩들이 득실득실할 것 같은 나무 판때기 침대 위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침대는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거리며 흔들린다. 오늘 하루는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절벽 길을 덜컹거리며 내달리는 지프차의 음주 운전자에게 장장 11시간 동안 운명을 떠맡겼다. 다친 무릎의 통증조차 까마득 잊고 있었다.
버스 스탠드 부근의 사원에서 나를 지옥으로 끄잡아 들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전 읽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녹음기를 통해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에 마음상태가 점점 뒤틀려 가고 있었다.
성인들이 말씀을 몸으로 행하지 않고 단지 신으로 떠받들며 '신을 믿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로 천국에 갈 수 있다면 현생은 악으로 들끓는 지옥이 될 것이다. 그들은 전쟁까지 불사해 가며 수없이 많은 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믿습니다' 한마디로 면죄받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게 '믿습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정작, 천국가는 길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성인들의 말씀은 믿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숙소 밖에서 들려오는 경전 소리에 종교,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떠올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싱거운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드디어 네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