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네 명이 밀착해서 앉아 죄수처럼 가야 했다.
송성영
나는 무릎 통증을 잊고 이런 자세가 너무 재미있어 사진기를 꺼내 몸을 최대한 뒤로 재껴 사진을 찍었다. 옆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본다. 이런 모습이 우습지 않는냐는 표정으로 낄낄거리며 말했다.
"나는 행복한 죄수입니다." 내 말 뜻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들 따라 웃는다. 비좁은 지프차 안이 '해피'해졌다. 거기다가 인도 특유의 경쾌한 음악이 문시아리에서 출발할 때부터 끊임없이 해피하게 흘러나온다. 시트 비닐 포장조차 벗기지 않은 신형 지프차이다보니 음향 상태가 좋다. 운전기사는 다양한 음악을 제공한다. "해피! 해피!"로 시작하는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는 그 "해피 해피" 음악에 몸을 떠맡긴다. 두 손을 무릎사이에 끼워놓고 지프차가 흔들리는 대로 몸을 떠맡긴다. 비포장도로에 흔들리는 지프차와 음악 소리가 하나가 되어 몸이 흔들린다. 흔들흔들 목을 까닥까닥 흔들어 대는 인형처럼 몸을 흔들리는 지프차에 맡긴다. 마음조차 음악에 맡긴다. 감정 실린 노래 소리에 따라 목적 없는 나의 여행길처럼 신나면 신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떠맡긴다.
차장 너머의 풍경조차 평화롭다. 밭에서 소 쟁기질을 하면서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사람이 보이고 논두렁에 우두커니 서서 신작로를 달리는 지프차를 바라보고 있는 꼬마 녀석이 보인다. 저 아이의 모습은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달리는 버스를 바라보며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는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버스, 신작로 끝 어딘가에 있을 너른 세계로 하염없이 떠나고 싶었다.
학교에 가는 것이 싫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학교 주변을 설명하는 선생으로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오줌이 마려워 꼼지락 거리는 내게 선생이 움직이지 말고 자세를 바르게 하라 경고장을 날렸던 것이다. 해질녘까지 산과 들을 산토끼처럼 뛰어 다니던 녀석이 입학첫날부터 부동자세로 배워야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처럼 혼자서 하늘과 나무와 땅과 대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억압적인 학교에서 벗어나 일요일이 되면 홀로 갱변(어린 시절 냇가를 갱변으로 불렀다.)에 나가 해질녘까지 고기를 잡아가며 백사장에서 놀았다. 용돈이 모아지면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니고 종착에서 종점까지 버스를 타는 것을 즐겼다.
갱변 모래사장에 누워 노래를 부르는 어린 내가 보인다. 어느 여가수의 "선 데이 먼 데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 가기 싫어 일요일을 기다리는 인생이 되었다. 선생들에게 억압당하는 학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나를 만끽하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먼지 풀풀 날리는 버스를 타고 냇물을 따라 너른 강으로 나서고 싶었다. 그 너른 강 끝에 있다는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너른 바다로 나서면 무엇인가 갈증을 채워줄 자유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너른 바다로 나서고 있는 나는 더 심한 갈증을 앓고 있다.
논두렁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가 멀어지고 있다. 내 오래전의 과거처럼 먼지 속에 사라지고 있다. 아이와 멀어지고 있는 지프차 안에서 나는 지금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자유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고 있는 것일까 라는 물음 앞에서 여전히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