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위구르 여행.
김동우
한 시간 정도 지나 작은 마을에 버스가 정차했다. 버스 기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간다고 했다. 양꼬치와 라멘은 카스지역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중 하나다. 카스에서 맛본 양꼬치는 감히 최고라는 찬사를 붙여도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라멘은 스파게티의 원조 격인 면 요리다.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하고 양고기에 피망 등이 함께 들어간 라멘은 스파게티를 그대로 빼닮았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스파게티가 라멘을 닮았다고 말하는 게 맞다. 맛은 좀 더 담백하고 동양적이다. 라멘 한 그릇을 주문했다. 빨간색 소스를 두른 양고기와 각종 야채가 두툼한 면 위에 소담스럽게 담겨 나왔다. 스파게티에 길든 내 혀에 맛의 새 지평을 열어주는 음식이었다.
다시 버스가 뻥 뚫린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슬슬 카라코람하이웨이의 감춰진 황홀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만년설산이 내 시야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대평원이 지평선을 이룰 때쯤 엄청난 규모의 산맥이 불쑥 솟아올랐다.
장관이었다. 180도 와이드버전으로 설산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앞자리에 앉은 건 행운이었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황량함은 웅장함을 만들어 냈고, 웅장함은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산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했다. 산 위에 내려앉은 눈은 마치 초코케이크를 덮고 있는 생크림 같았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바람과 구름도 잠시 쉬어가는 듯했다.
이곳에 오기 위해 리탕~캉딩 12시간, 캉딩~청두 8시간, 청두~시안 17시간, 시안~우루무치 30시간, 우루무치~카스 25시간 등 버스와 열차에서만 90시간을 보냈다. 집념의 승리였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풍경은 충분히 그간의 고생을 보상해 주고도 남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탄성을 내지르는 사이 버스가 검문소에 도착했다. 모든 승객이 내려 신원을 확인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곤 다시 인간의 힘으로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자연'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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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카라쿨 호수가 다가왔다. 이 호수는 카라코람하이웨이의 거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파키스탄으로 넘어가지 않는 여행자들도 일부러 이 호수를 보기 위해 카스나 타슈쿠르간을 찾는다. 운이 좋으면 버스가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호숫가 주변에는 사진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수 안에 담긴 설산 그리고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내추럴이네 정말. 아~ 내가 찾던 게 이런 건데..."매일같이 이 구간을 다녀서 더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무심하게도 버스 기사는 이곳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간간이 버스 기사가 담배를 물면 민첩한 행동으로 라이터를 건네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서비스는 다한 뒤라 실망은 더욱 컸다.
우울했던 기분도 잠시였다. 카라쿨 호수에서 타슈쿠르간까지는 흰색 분칠을 한 설산들이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눈길을 옮기기 바빴다. 그럴수록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버스는 카스를 떠난 지 7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중국 여정의 마지막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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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고 따뜻한 날이 온 뒤에도 한참 있어야 열리는 길이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길은 곧 닫혀버린다.
세계 일주를 다녀온 사람들이 최고의 풍경으로 꼽는 '카라코람하이웨이(KKH)' 이야기다. 중국 카스에서 시작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진 절대 비경을 간직한 이곳은, 보통 5월에서 11월 사이 통행이 가능하다.
'카라코람'이란 말은 오고타이한국(汗國)이 수도로 정한 '카라코룸'(검은 바위)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길은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한 갈래로 동서교역의 통로였으며 혜초 스님의 여행 경로에도 일부가 포함돼 있다.
4700m의 쿤자랍 패스(일명 피의 고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으로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한다. 원래 카라코람하이웨이는 사람이나 말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길이었다. 중국과 파키스탄 정부는 1966년 양국 간의 교역로로 활용하고자 카라코람하이웨이 건설을 시작했고, 총연장 1200km에 왕복 2차선 규모로 1980년 완공했다. 중국 쪽 길은 대부분 포장이 돼 있지만 파키스탄 쪽은 현재 포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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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3] 국제버스 타고 국경 넘어 트레킹 천국으로타슈쿠르간의 양꼬치구이도 일품이었다. 하지만 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살며시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걸 물었다. 이름은 '소멘'이라고 했다. 음식이 나온 뒤 보니 면을 얇게 뽑아 파스타처럼 토막을 낸 거였다. 맛은 파스타 이상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곤 타슈쿠르간에서 숙소로 잡은 교통빈관으로 돌아와 홀로 조촐하게 중국의 마지막 밤을 맥주 한 병으로 자축했다. 집 떠난 지 33일째 되는 날이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는 출국수속에 맞춰 출입국사무소(하이관)로 향했다. 교통빈관 여사장은 길을 묻는 나에게 왼쪽으로 가라는 말뿐이었다. 몇 번이나 다시 길을 물었지만 왼쪽 이상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성의'란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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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나와 길을 묻고 물어 20분을 걸었다. 목적지는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따라 도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이관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나보다 먼저 출국수속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앗!' 제대로 속은 느낌이었다. 직감적으로 오전 9시 시작된다는 출국수속은 베이징 타임이 아닌 신장 타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공식적인 시간은 베이징 타임을 따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2시간이 늦은 신장 타임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카스 버스터미널에선 베이징 타임으로 시간을 안내받았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이 시간에 따라 일을 하는 줄 알았다. 짧은 생각이었다. 업무가 시작되려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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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은 '한잼'이란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시간이 과하게 남아 간단히 아침을 먹을 겸 캔 커피와 비스킷을 사왔다. 혼자 먹기가 뭐해 한잼에게 비스킷을 좀 갖다 주니 수줍어하면서 건네받는 모습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하늘의 조화란 말인가! 호기심에 하이관 정문 유리창 너머로 안쪽을 들여다보고 돌아서는데 땅바닥에 거금 50원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그래도 이걸 날로 먹을 순 없었다. 최소한의 매너를 지켜야 했다. 한잼에게 5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혹시 잃어버린 돈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짧게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돈을 줍든 말든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흐뭇하게 50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오전 11시쯤 횡재한 돈 50원을 더해 버스 티켓을 샀다.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국제버스의 가격은 255원쯤 했다. 이날 파키스탄 소스트로 넘어가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4명뿐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모두 파키스탄 사람들이었다.
출국수속이 시작될 때쯤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국제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국제버스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내가 타고 가야 할 버스는 낡아빠진 미니 봉고였다. 시트는 해질 대로 해져 있었고, 손으로 시트를 털면 빈대들이 마구 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좋건 싫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출국수속이 시작됐다. 하이관 직원은 내 여권의 속지 한 장 한 장을 자외선 검사기에 비춰보는 꼼꼼함으로 날 긴장시켰다. 그 덕에 출국도장을 받는 시간이 무척 길어졌지만, 심사는 순조로웠다.
버스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내게 젊은 군인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날 보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비키라고 했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마지막 중국검문소까지 동행할 군인이었다. 시키는 대로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파키스탄 아저씨 2명 사이에 끼는 신세가 됐다. 사진을 찍기에는 최악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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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버스는 하이관을 빠져나왔다. 다시 카라코람하이웨이가 시작됐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푸른 평원 위에 위구르 족의 생활이 그대로 펼쳐졌다. 양 떼와 야크 무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고, 낙타를 타고 어슬렁거리던 목동은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마을 아낙네들도 지나가던 차를 보면 인사를 해주었다. 당장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우리나라에선 지나가던 차에 손을 흔드는 일이 택시에만 해당하는 일이지 않나. 참 정겨운 모습이었다.
국제버스가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슬슬 중국 쪽 카라코람하이웨이가 막바지에 다다른 분위기였다. 멀리 빨간색 지붕의 마지막 검문소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가 바리케이드에 막혀 멈춰 섰다. 군인 한 명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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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포트!"그는 출국도장과 파키스탄 비자를 확인하곤 아무 말 없이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시켜 주었다. 버스가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해발 4700m의 '쿤자랍 패스'를 넘고 있었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눈을 감았다. 감상 따위는 없었다.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네.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건 아닐까? 어쨌건 굿바이~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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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여행이 편할 줄만 알았다. 보고 먹고 자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여행은 온전치 않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행도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여행 안에서 자유로웠지만 여행은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었다. 직장을 잡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칠 때 여행은 점점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갔다. 어쭙잖은 지식과 경험을 믿고 허세를 부리며 자만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 일주의 시작 중국은 교만한 나를 일깨워주었다. 국경을 넘으며 난 여행을 다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여행이 여행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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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쿨 호수는 해발 3600m에 있으며 파미르 고원에서 가장 높은 호수다. 이 호수는 1년 내내 만년설로 덮여 있는 마즈타가타 산(7545m), 콩구르타그 산(7649m), 콩구르튜베 산(7530m)이 둘러싸고 있다.
카라쿨 호수는 카스에서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따라 타슈쿠르간 방향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카스나 타슈쿠르간에서 투어를 알아보는 방법이 가장 손쉽다. 한편 타슈쿠르간은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인 쿤자랍 패스를 지나기 전 마지막 도시로 이곳에서 출국수속을 밟고, 파키스탄과 중국을 연결하는 국제버스를 타야 국경을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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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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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시간 달려 마주한 '절대비경', 황홀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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