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전도(1861)에 표기된 영조의 잠저 창의궁(彰義宮)과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의통방(義通坊)
유영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의 북동쪽 일대가 통의동(通義洞)이다. 이곳은 본래 조선시대 한성부5부 52방 가운데 하나인 의통방(義通坊)이라 불리던 곳인데 갑오개혁 때 통의방(通儀坊)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그대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한양도성 내 여전히 조선지명을 사용하는 동명 |
통의동처럼 조선시대의 지명을 지금도 계속 쓰고 있는 곳이 몇 있다. 당시 한성부를 구성하고 있던 5부 52방의 명칭 가운데 여전히 같은 명칭을 쓰고 있는 동은 종로구적 선동(積善洞), 가회동(嘉會洞), 안국동(安國洞), 서린동(瑞麟洞)이다.
반면 청계천 이남의 중구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며 그 명칭조차 일본식으로 바뀌어 조선시대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동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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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 통의동 35번지 일대는 조선 영조의 잠저인 창의궁(彰義宮)이 있던 곳으로 대로변에는 창의궁터라는 표석이 놓여 있다.
참고로 잠저(潛邸)란 국왕의 장자로 태어나 왕세자가 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바로 이 곳이 숙종의 차남으로 태어난 영조가 292년 전까지살았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추사 김정희의 집인 월성위궁도 이 일대에 있었다는 표석도 함께 놓여 있다.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혼인함으로써 영조의 부마가 되었고, 영조는 부마 월성위 김한신을 위하여 자신의 잠저 옆에 집을 지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월성위궁이다. 이렇게 되어 김한신의 증손인 추가 김정희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다. 결국 160년전 추사 김정희도 이곳에 살았던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니 역사책에서만 보았던 인물들이 결코 현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기였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