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머리를 땋아주는 아이들.
양학용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친구와 함께 어느 날 문득 시외버스터미널에 갔었다. 대합실 벽에 그려진 지도를 보며 어디로 갈까, 둘이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렇게 눈으로 짚어보았을 거다. 청학동.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머리를 길게 땋은 도령들이 훈장님 앞에 무릎 꿇고 공부하는 서당이 있고, 삼베 저고리 입은 아낙들이 개울가에서 빨래하며 현대 문명을 등지고 살아간다는 지리산 자락의 마을.
"하동! 학생 둘이요~."친구는 내가 주머니 안의 돈을 헤아려보기도 전에 그렇게 말했다. 오늘 안에 돌아올 수 있는 길인지도 따져보기 전에. 그리곤 울산에서 하동까지 그리고 다시 청학동까지 버스를 타고 달렸었다. 그 길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여행이었다. 드디어 떠났다는 느낌. 17년 동안 살아왔던 나의 영역 밖으로 나섰다는 느낌. 부모님을 따라 부산 외갓집을 오가던 길과는 분명 달랐었다.
생각해보면 그날 난 내 삶을 둥그렇게 경계 짓던 얇고 투명한 막을 들추어 '세상 밖의 세상'을 처음 만났던 것 같다. 사실 반나절이 넘게 걸려 도착한 청학동에서 내가 처음 보았던 것은 서당에 달린 현대식 벽시계였고, 그것이 단절의 공간에서 만난 단절되지 않은 현대문명의 상징으로 내게 다가왔지만, 나의 첫 여행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떠났으니까. 이미 내게 익숙하던 하나의 세계를 떠나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고 있었으니까.
돌아오는 길에 우린 더 이상 차비가 없었지만, 그래서 더 즐거웠다. 하동 길바닥에 앉아있던 나는 '울산시'라고 적힌 크고 하얀 번호판을 단 자동차를 보고 무작정 태워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여행자가 되어 처음 시도해본 히치하이킹이었던 셈이다. 그날 크고 하얀 번호판은 임시번호판이라는 사실과 그곳에 '울산시'라고 적혔다 해서 꼭 울산 소재의 자동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우린 실망하지 않았다. 그것마저 또 다른 세계에서 통용되는 암호 같았으니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세상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비밀을 알게 된 것은. 모든 것이 익숙한 세계와 모든 것이 처음인 세계. 세상 안의 세상과 세상 밖의 세상. 두 세계를 연결하는 오래된 비밀의 문이 여행이라는 사실도. 그러니까, 난 지금 궁금한 거다. 이번 여행이 여행학교 아이들에게 세상 밖 세상을 향한 그들의 첫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하는.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