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출입문사원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대기업 사옥, 그 중에서도 내가 근무하던 연구소는 별도의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서 출입을 할 수 있었다.
강상오
퇴직금을 받아 넣어뒀던 통장의 잔고도 슬슬 바닥이 나기 시작했을 무렵이 돼서야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그 회사는 이제 막 신설된 회사로 대기업의 사내 협력업체였다. 보통 대기업 사내 협력업체라고 하면, 생산 공정 중에서도 노동강도가 높고 위험한 일들을 받아 하거나 생산 라인에 파견 인력을 보내는등의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는 특이하게도 연구소 소속의 업무 도급회사였다.
내가 이 회사에 취업한 이유는 주5일 근무에 교대 근무 없이 주간 근무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건 '근무 환경'과 '업무 분야'였다. 그 대기업에서 회사가 맡고 있는 업무는 PDP연구소 '신뢰성 센터'를 대신 운영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근무지가 그 대기업 연구소였고 담당 업무는 그 연구소에서 새로 개발되는 제품의 신뢰성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내가 계속 해오던 디스플레이 분야 QC(Quality Control)와 비슷했기 때문에 아주 익숙한 분야였다.
인터넷 취업 사이트에서 그 회사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작성해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 역시 그 대기업의 연구소가 있는 사업장에서 진행됐는데 아직 사업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라 사무실이 없어 구내식당에 앉아 면접을 봐야 했다. 면접을 보러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4명이었고 우리는 모두 합격했다. 그렇게 우리 넷은 새로 창업한 신생 회사의 창립 멤버가 됐다.
우리와 마주 앉아 면접을 본 사람은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50대는 족히 돼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였다. 사장님은 이미 그 대기업의 다른 계열사에 사내 협력업체를 하나 운영하고 있었고 그와 별개로 이번에 새로 추가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대기업의 사내 협력업체 사장 자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대기업 고위 임원 출신 정도는 돼야 일정 부분의 사업을 하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 대기업의 사업장에서 나오는 쓰레기 처리 업체까지도 모두 그 회사 출신들이 하고 있다고 했다. 알고보니 내가 취업한 회사의 사장님도 그 대기업 '개발 실장' 출신이었다.
다함께 그 자리에서 '합격'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우리 1기들은 면접을 본 날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첫 출근을 하는 날도 계속 됐다. 번쩍번쩍한 대기업 연구소에 출근해서 우리가 앞으로 생활할 사무실에 책상을 옮겨 놓고 청소를 했다.
그 대기업의 연구소는 드 넓은 사업장 내에 있는 건물중에 가장 좋은 건물의 꼭대기 층에 있었다. 그 사업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원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와 별개로 연구소가 있는 층의 엘리베이터 앞에는 별도의 보안검색대가 또 설치가 돼 있었다. 연구소 소속이 아니면 그 대기업의 직원들도 출입이 힘든 그곳을, 협력업체 직원인 우리는 매일 들락거릴수 있었다. 그 또한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점심시간에 한참을 걸어 처음으로 가본 그 대기업의 구내식당도 엄청 좋았다. 메뉴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중에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었다. 식당 이외에도 이 대기업의 사업장 내에 있는 좋은 복지 인프라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내 싱글벙글했다. 잠시 '이 대기업의 직원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나도 취업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우리 1기 멤버 이외에도 과장님 한 분이 출근했다. 관리직으로 입사한 과장님은 30대 중반으로 역시 이 대기업 출신이었다. 이렇게 사장님과 과장님 그리고 우리 1기 멤버 4명으로 구성된 작은 스타트업이 내가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마치고 처음으로 '일반 사원'으로 근무한 회사였다. 그곳에서 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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