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취직한 회사는 대기업 통신사에 납품되는 이동통신 중계기를 개발 생산하는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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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함과 동시에 나는 팀장님의 소개로 품질관리팀 사무실에 입성했다. 당시 팀의 구성원들은 10명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래하는 대기업에 상주하고 있는 직원도 있고 외부에 있는 업체로 출근한 직원도 있어서 사무실에 몇 명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에 있던 팀원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한 선배사원에게 인계됐다.
PC 앞에 앉아 업무를 보는 선배사원 옆에 붙어서 어색하게 두리번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담배를 피우러 가자고 하면 따라나가 함께 담배를 피우며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회사에 처음 취직하면 그 회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월급은 언제 나오는지, 퇴근은 일찍 하는지, 주말엔 잘 쉬는지 온통 궁금한 것 천지였다.
당시 구미에 있던 중소기업 중에 입사를 하기 전 그런 부분을 명확히 알려주고 사람을 채용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취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런 걸 대놓고 물어보면 '계산적인 놈'이라는 이미지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 없이 입사했다. 단지 면접을 볼 때 '이전 직장에서 벌던 돈보다 400만 원 더 많은 금액을 벌게 해주겠다'는 것과 '입사하면 품질관리팀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렇듯 중요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지 않고 사람을 뽑는 회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회사들은 초기 '이직률'이 높은 편이었다.
참 좋은 조건이었지만... 내겐 '자유'가 더 중요했다첫날 오전엔 선배 사원을 따라 함께 담배 피우러 다니고 오후에는 외주 생산업체에 제품검사를 하러 따라 나갔다. 당시 회사의 주력 제품은 통신사에 납품되는 '중계기'였다. 공장의 부지가 협소했기 때문에 당시 중계기를 만드는 생산 라인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회사는 흩어져 있는 사업체를 하나의 사옥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새 사옥을 짓고 있는것이었다.
온종일 그 선배를 따라다니며 회사에 대한 정보를 캐냈다. 그렇게 알아낸 정보 중에 가장 암울한 것은 '퇴근'과 '휴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스물넷의 내겐 회사가 아주 튼튼하다거나, 직원 복지가 좋다거나 따위는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단지 이 회사에 계속 근무를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없겠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지난 몇 년간 여러 회사를 다녔다. 그중엔 아주 환경이 열악한 곳도 있었다. '복지'라는 엄두도 못 낼 만큼 아무런 혜택을 못 받고 일한 곳도 있다. 또한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몇 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적도 있었다. 그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는 아주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한 게다.
이 회사는 대기업의 '가족회사'라 그런지 복지 수준은 그 대기업의 그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 회사면 쉽게 망하거나 월급이 안 나와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런 좋은 조건들도 '자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나는 나의 철학과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 만에 그 회사를 계속 다니지 않기로 했고, 다시 백수로 돌아갔다.
이후 그 회사는 구미공단 요지에 '공장'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만큼 세련되고 멋진 사옥을 완공했고 회사 이름 또한 다른 이름으로 바꿨다. 그 사옥 바로 옆에는 대기업 공장이 있었는데, 사옥만 놓고 보면 내가 그만둔 회사가 더 나아보였다.
어차피 인생은 선택의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