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성귀가 많은 밥상,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그러나 나는 속이 답답해서 잘 먹을 수가 없었다.
배지영
푸성귀가 많은 식단, 딱 내 스타일. 그러나 잘 먹지 못 하겠다. 제굴은 "왜요?" 하는 눈으로 나를 봤다. 나는 "이따가 9시부터 금식해야 해. 내일 아침에 간 검사랑 위 내시경 하거든"이라고 했다. 꽃차남은 "엄마, 그때처럼 병원에서 몇 밤 자고 오는 거야?"라고 물었다. 이모네 집에 자기를 맡겨주라면서 "만화 봐야지"라고 즐거워했다.
작년 이맘때, 나는 속이 불편했다. 음식을 먹으면 목구멍에 걸리는 듯 했다. 뭔가가 가슴께를 짓누르는 것도 같았다. 골치까지 아팠다. 위 수면내시경을 했더니 만성위염. 한두 달 정도 처방해준 약을 먹었다. 마시지 말라는 커피도 멀리했다. 얼마 못 가 본색이 나왔다. 커피를 마시고, 먹는 게 귀찮다고 끼니도 걸렀다. 다시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위 내시경 조직 검사, 비관적인 생각이 앞서고
목요일(12월 3일), 나는 위 내시경을 받았다. 매끄러워야 할 위는 울퉁불퉁. 이상하게 생긴 것도 있어서 두 개를 떼어내 조직검사 해 보기로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담담한 척 들었지만 힘이 풀렸다. 꽃차남 임신했을 때는 진료만 하러 갔는데 바로 입원해서 두 달간 병원에서 지낸 적 있다. C형 간염 치료 중에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와서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그냥 짜증이 나. 큰 병은 아니겠지. 그래도 계속 병원 다니면서 돈 바치고, 시간 들일 일 생각하면 진이 빠진다고. 너도 알지? 조직 검사만 하고 끝난 적이 없잖아. 왼쪽 가슴에서 섬유선종인가 빼내는 수술 하고, 빈혈 원인 찾는다고 위 내시경이랑 장 내시경까지 하고는 결국, 자궁근종 때문에 출혈 있다고 수술 하고. 이게 끝나지를 않는다고." 나는 병원에서 오자마자 동생 지현에게 하소연을 했다. 지현은 재깍 우리 집으로 와서는 "자매(지현이 나를 부르는 호칭)가 아프면, 이 집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아?"라고 물었다. 쓰레기를 버릴 사람이 없게 된다고, 형부 팬티하고 제굴이 팬티하고 구분할 사람이 없게 된다고, 그런 중요한 노릇을 하는 사람이 나라고 일깨워줬다. 맞다. 화장실 청소도 내가 한다.
금식한 지 15시간 만에 지현이 끓여준 죽을 먹었다. 비관적인 생각이 좀 가셨다.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나쁜 습관도 좋은 거라고 했다. 몸이 아프면, 나쁜 습관만 고치면 되니까. 그런 것도 하나 없는데 병들면 죽는 거라고. 일단, 나는 커피에 우우를 부어서 한 잔 마시고 밥벌이를 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는 1주일 뒤부터는 좋은 습관을 유지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