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를 유심히 관찰한 식당사장
공갈만
식당 사장은 백희정이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백희정이 식당에 머무는 동안 백경환이 찾아온 적은 없었다. 백희정이 머문 옥상 집으로 가는 계단은 실내에 있다. 낯선 사람이 계단을 지나가면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1년 11월 10일 광주고등법원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희정은 본인이 무죄로 나올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선고 날 아침 순천에서 광주로 출발했다. 아버지는 교회 목사에게 "판사님이 빨리 끝내줘야 할 텐데"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빨리 돌아와서 OO댁 하우스 일을 해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 품삯을 받아 농약을 사서 밭에 약을 칠 계획이었다.
그날 광양 식당 사장은 법원이 백경환에게 무기징역, 백희정에게 20년형을 선고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장은 그때야 희정이 살던 방으로 올라가 봤다. 이불은 개지 않았고, 바닥은 담배 재와 먼지로 뒤엉켜 있었다. 백희정이 구속된 후 식당 가게로 우편물이 날라 왔다. 그것은 게임 접속 비용 등을 포함한 백희정 휴대전화 요금 통지서였다. 백경환은 그 후로 농사를 짓지 못해 농협 대출 담보로 잡혀 있던 집터는 경매로 넘어갔다. 백희정씨 언니들은 '결혼 후에도 나물이며 채소를 갖다 먹곤 했던 고향 집이 없어졌다'며 한탄했다.
한 가족이 파국을 맞이한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은 부녀 성관계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검찰 항소이유서는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경환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세 딸을 모두 건드렸다는 자백이었다.
'피고인 백경환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백희정을 성추행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고, 또한 조사과정에서 언니들인 백○○, 백○○에 대한 성추행 사실도 일부 시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백○○, 백○○은 현재 결혼을 한 상태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조서는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검찰 항소이유서 77p검찰 주장대로라면 세 딸을 모두 성추행한 것은 마을 아저씨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 백경환이었다. 하지만, 취재 중 큰딸은 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몇 번이나 목이 메었다. 1심 무죄를 받고 출소한 아버지를 걱정해 고향 집을 자주 찾곤 했다. 둘째 딸은 결혼 후 아이를 낳으려고 친정 집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출소한 아버지를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데려왔다. 필자가 백경환을 면회하고자 순천교도소를 갈 때는 둘째 딸과 동행했다. 그때 부녀 풍경은 '성추행'이란 단어와 멀어 보였다.
무엇보다 두 딸이 아버지 결백을 주장한다.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들은 검찰 주장대로 아버지와 막내가 범인임을 알면서도 은폐에 가담하는 것일까? 이제부터 우리는 검찰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하나씩 따져보겠다. 검찰 공소장을 기반으로, 당시 통화기록, 주변 진술을 바탕으로 나흘간 기억을 재구성해보자. 우선 2009년 7월 2일부터 시작한다.
(제14화 – '첫째 날 재구성'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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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성폭행 증언한 막내딸 세 딸 돌아가며 성추행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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