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차이 나는 형제. 꽃차남은 항상 "형형이 만든 건 맛없어"라고 한다.
배지영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한 날. 우리 집은 텅 빈 것 같았다. 유치원 갔다 오자마자 거실에 가방을 확 팽개치는 꽃차남이 없었다. 커다란 레고 상자를 집안 곳곳에 끌고 다니며 흩뿌려놓는 꽃차남이 없었다. "다 맘에 안 들어. 울어버릴 거야"라고 생떼를 쓰는 꽃차남이 없었다. 한 밤을 자고 오는 유치원 캠프에 갔다.
"엄마, 꽃차남 없으니까 저녁밥 안 먹어도 되지요? 그냥 치킨 시켜 먹어요."제굴은 밥 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식구들이 저녁밥 잘 먹나 확인하고 다시 나가는 남편도 "오늘은 치킨 시켜도 되겠다"라고 했다. 나는 주는 대로 먹는 사람, 무조건 좋다고 했다. 제굴은 가뿐하게 '1인 1닭'을 달성했다. 심지어 먹을 때도 싸우는 동생이 없으니까 평온해 보였다. 역시나 "엄마, 꽃차남 없으니까 쫌 좋지요?"라고 했다.
그날 밤, 제굴은 나에게 "이거 재밌어요" 하면서 <십 대 밑바닥 노동>을 권했다. 살다보니 제굴이가 먼저 읽어보고 건네주는 책이 있다니. 눈 안에 하트를 가득 담아서 제굴을 봤다. 제굴은 그 사이를 못 참고, 웹툰을 봤다. 제굴에게 잔소리를 하려는 순간, 남편이 퇴근했다. 그는 거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상하다. 꽃차남이 없으니까 집이 집 같지가 않아." 11월 4일 오후, 꽃차남이 돌아왔다. 거실에 가방을 확 던지는 걸로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했다. 반듯한 어린이로 지낸 1박 2일 간의 사회생활, 힘들었는지 투정부터 부렸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서 형형이 제일 싫어"라면서도 제 형 방으로 갔다. "강제굴 이불, 꿀돼지 냄새 나"라고 하면서도 제 형의 침대에 누웠다. 곧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