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앵글리스 학교 정원 모습학교 앞에 있는 아담한 정원
정성화
"윌리엄 앵글리스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와라"호주의 쉐프 양성학교는 '르꼬르동 블루'와 '윌리엄 앵글리스'가 유명하다고 한다. 유명한 만큼 학생 모집이 어렵지 않으니까 학비도 비싸고 요구하는 영어수준도 상대적으로 높다.
윌리엄 앵글리스의 학비는 2년 동안 약 3만불, 우리 돈으로는 3000만 원 정도가 된다. 큰애가 말한 학교는 학비가 2년에 1만 5000불로 정확히 절반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유학생들이 저렴한 학비 때문에 이런 학교를 선호한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가 거기 직업학교를 졸업하여 영주권을 취득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처지는 크게 3종류로 나뉜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집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큰애와 같은 부류와, 집안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큰애의 사촌과 같은 부류, 그리고 학비만 약간 보조를 받는 큰애 친구와 같은 부류가 있다.
먼저 호주로 간 큰애는 한국에서 큰애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던 사촌에게 빨리 호주로 오라고, 속된 말로 '바리바리'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알바를 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급여수준에 아마 신천지(?)를 본 듯한 느낌이었으리라. 그렇게 호주로 건너간 큰애의 사촌은 스스로 번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지독하게 절약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호주의 물가체계는 이런 것이 가능한 구조이다.
큰애 사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학교에 입학하면서도 집에 손을 전혀 벌리지 않았다. 학교도 학비가 싼 학교를 선택했다. 집에서 부분적으로 지원받는 큰애의 친구도 마찬가지로 그 학교를 선택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교수진, 시설 등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요리실습 체계를 보면 그 차이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보통 요리실습 수업은 하루에 4가지 종류의 요리를 만드는데, 큰애 학교의 학생은 혼자서 만들고, 사촌이 다니는 학교는 학생들이 팀을 만들어 같이 만든다.
팀으로 활동하면 대충 어영부영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혼자서 다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당연히 큰애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사촌이나 큰애 친구보다 많이 늦고, 스트레스도 더 받는다.
큰애 학교에는 자체 레스토랑이 있어서, 2학기부터는 거기에서 음식 주문이 몰려드는 러쉬아워를 경험하게 한다. 식사 시간에 한꺼번에 몰려 드는 주문을 체계적으로 처리하는 훈련을 받다 보면 실력과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축적되고, 동료 쉐프와 협력하여 일하는 방법도 배우게 된다. 이렇게 2년이 지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는 윌리엄 앵글리스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 오라고 했다.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물러서는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싫었던 것이다. 대충 2년 학교에서 버티고, 운 좋으면 영주권 따서 다른 일 하는 것은 내가 절대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나는 큰애가 진정한 쉐프가 되기를 원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곳에서 좀더 전문적인 요리를 배우거나, 크루즈선의 요리사가 되어 전세계를 두루 경험하는 것과 같은, 그런 도전적인 미래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큰애의 약점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복학하는 것을 지옥에 다시 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알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다른 쉐프 양성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윌리엄 앵글리스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차별성이 있다고 한다.
지금 메일을 다시 뒤져보니 올해 1월 14일 큰애는 마지막 영어 에세이를 보내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윌리엄 앵글리스로부터 입학허가서가 나왔다. 큰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공부를 해서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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