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분을 증명할 오이 거래.
공갈만
그렇다면 당시 이씨의 자전거 수리점에 청산가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할 길은 없을까? 이강춘씨의 큰아들은 1982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 수리점에서 일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나중에는 가업까지 물려받고 지금도 같은 계통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에게 철 담금질 기술을 전수받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철 담금질 방법을 모른다.
물론 이강춘씨가 아들 모르게 청산가리를 숨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강춘씨에게 청산가리가 있었다면 분명히 또 다른 공급자가 있었을 것이다. 공급자를 추정할 수 있는 힌트는 동네 사람과 대화에서 나왔다. 한 할아버지가 1960년대 자기가 병원에 근무했다며 당시 사람들이 청산가리 구매를 부탁했고 이에 구해줬다고 했다. 당시는 청산가리 관련 규제도 없던 때였다. 동네 사람 진술을 확보하면 1990년 이강춘씨가 청산가리를 구한 정황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이처럼 명확한 입증 없이 부녀는 자백만으로 유죄를 받았다. 대법원 판결(2012.3.15.) 이유는 이렇다.
'과거 철 용접 등에 청산가리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고 채소농사를 짓는 사람들 사이에 해충을 박멸하기 위한 수단으로 청산가리가 암암리에 유통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즉, 검찰은 해충을 박멸하려는 농민 사이에 청산가리가 암암리에 유통된 증거들을 풍부하게 제시했다. 이는 백경환씨가 오이를 재배하면서 해충을 없애고자 청산가리를 사용했다는 진술을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검찰이 법정에 낸 보강 증거를 살펴보자.
검찰은 백경환씨 동네 사람 4명과 다른 동네 사람 2명에게 받은 진술을 법정에 냈다. 모두 오이 농사에 청산가리를 썼다는 내용이다. 이는 경찰에서 조사한 내용이었다. 검찰이 살인사건 기록을 검찰로 송치하도록 요구하자 경찰은 이에 따랐다. 검찰은 사건 기록 중 공소유지를 위해 유죄 입증에 유리한 내용을 뽑아 재판에 제시했다.
처음 경찰이 밝혀낸 내용부터 살펴보자. 당시 동네 사람 가운데 이금형씨가 가장 먼저 청산가리를 썼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