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럼 선생네 집에서 송별회를 하던 날, 가텀씨를 비롯해 여덟 사람이 모였다.
송성영
코사니에서 좋은 인연을 맺은 여덟 사람이 모였다. 다들 래카 라인이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가텀씨가 키득키득 익살스럽게 웃어가며 술병을 꺼냈다.
"송! 오늘 당신을 위한 자리인데 우리만 술을 마셔야겠네요." "나도 한 잔 주세요.""약 때문에 술은 무리일 텐데요.""한 잔 정도는 상관없습니다."가텀씨는 내개 술 한 잔을 따라 주면서 헤어지는 마당에 한 마디 하라고 했다. 나는 '코사니에서 당신들을 만나 너무나 행복했다. 당신들을 만난 것은 내게 큰 축복이었다. 당신들의 친절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인사말을 했고 가텀씨와 부럼씨는 나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다음에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당신을 떠올릴 때 마다 탄트라 치킨을 기억하겠소."가텀씨가 나의 엉터리 영어 수준을 놀려대자 모두가 박장대소 했다. 일전에 내가 탄두리 치킨을 탄트라 치킨이라 발음했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다. 힌두교에서 파생되어 나온 요가 수행법 중에 하나인 탄트라(Tantra)는 불교에서 밀교로 전해져 오고 있다. 그 탄트라에 치킨을 붙여 말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채식을 하다가 그 탄트라 키친을 먹는 바람에 무릎을 다친 것 같습니다. 탄트라 키친은 나의 카르마였습니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모두가 웃었다. 그렇게 내가 30여 일 코사니에서 머무는 동안 함께 공유했던 재밌는 기억들을 더듬어 가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나였기에 그동안 이들이 나를 어떤 인격체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리바리한 나를 위해 송별회 자리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다. 코사니에서 밤 9시면 늦은 시간이다. 모두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부럼 선생이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불편한 다리로 밤길을 걷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세요.""비노트씨가 걱정할 것입니다.""송, 당신의 엄마한데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가텀씨가 농담조로 말하는 순간 때맞춰 부럼선생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가텀씨가 키득키득 웃어가며 전화를 받고 있는 부럼씨에게 물었다.
"송의 엄마?""맞습니다."코사니에서 머물면서 주말마다 부럼 선생네 집에서 식사하고 밤늦게 까지 술잔을 기우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민박집 비노트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었다. 코사니 산길은 표범이 출몰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밤길 조심하라는 전화였다.
우리는 그때 마다 비노트가 아들 걱정하듯 나를 꼬박꼬박 챙기는 엄마라고 놀려댔다. 비노트씨는 엄마처럼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무릎 치료에 열과 성을 대해 주었던 그는 부럼선생네 집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설 때도 지팡이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걸으라며 내게 몇 번이고 당부했다.
부럼선생이 비노트씨가 나와 통화하고 싶어 한다며 손전화기를 건네 줬다. 그는 나에게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묻더니 밤길에 몸이 상할 수도 있으니 부럼 선생네 집에서 자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부럼선생은 부부가 사용하는 안방을 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럼 선생이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목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욕실에서 머리에 남은 물기를 털며 나온 그가 방으로 들어가 명상에 잠긴다. 그의 하루는 명상과 함께 시작 한다는 것이었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비노트씨에게 한 달 동안 잘 지내고 덕분에 무릎이 좋아졌다는 인사와 함께 방세를 지불했다. 그는 내 몸 상태로 문시아리로 떠난다는 것은 무리라며 며칠 더 묵었다 가라고 한다.
"더 이상 방세를 받지 않겠습니다. 며칠 더 머물다가 출발하세요. 그 몸으로 문시아리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일 떠날 것입니다."본래 나는 이곳 북인도 코사니에서 20일 정도 머무르고자 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월세방을 얻는 바람에 한 달 이상을 머물게 됐던 것이다. 그 덕분에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무릎을 다쳤지만 그 좋은 인연들에 푹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하지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기 마련이듯 그 안락한 시간 속에서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아내에 대한 분노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코사니의 안락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그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아내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인도로 온 이유 중에 하나가 그러했듯이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내 몸과 마음을 던져 놓다 보면 그 분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