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오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전후 70년에 관한 역사인식을 반영한 담화(일명 아베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민당을 대체하는 일본 보수 정치는 오자와 이치로 등 자민당에서 탈당한 자유주의 보수 세력, 센고쿠 민주당 간사장 등 사회당에서 탈당한 혁신 세력, 그리고 칸 나오토 등 시민 운동 그룹이 결합한 민주당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갔다. 민주당은 집권 자민당을 심판하자는 논리로 2009년 역사적인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이루고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을 성립했다.
하지만 하토야마 내각은 국민의 높은 기대에도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백지화하고 현 외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끝내 지키지 못해 조기 붕괴했다. 하토야마 내각의 실패에는 외무성을 비롯한 친미파 관료의 방해의 영향도 컸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의 한반도 상황 등 외부적 영향도 컸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자민당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온 공공 사업을 중지하고, 빈곤 격차 해소와 복지정책을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등 정책의 전체 방향성은 타당했다. 하지만 무모한 재정 계획과 추상적인 정책 내용들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게다가 2011년 3월 11일 촉발된 국가 위기적 상황(대지진, 쓰나미, 방사능피해)에서 총체적인 정권 운영의 무능함을 보여 국민의 실망을 넘어서 강한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잃어버린 경제 20년, 3.11 이후의 국가적 위기 사태의 봉착, 사회당 및 공산당의 혁신 세력의 붕괴, 자민당 내의 자유주의 보수 세력의 개혁의 한계, 민주당의 중도 보수 세력의 무능력과 집권 실패는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강한 정치적 지도자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토대 위에서 제1차 내각의 실패에도 아베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보수 우익 세력은 "강한 일본을 되찾겠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시 자민당으로 정권 교체를 이뤘다.
일본의 국민은 전후 국가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고 장기적인 새로운 대안 사회로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전후 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강한 일본 사회를 되찾는 단기적인 이해 관계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아베 정권은 국가 위기의 대중 심리 속에서 내셔널리즘을 이용해 정권을 장악한 파시즘적 요소를 잉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2부에서 계속)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 경제통상, 사회통합 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싱크탱크입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권합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