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사니 인근 마을 서머쉐에서 만난 네팔 짐꾼 부자. 한 개에 5루피(100원 정도)하는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었다. 인도 여행중에 아주 힘겨운 생활을 하는 네팔 사람들을 종종 만났지만 구걸하는 네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송성영
네팔 사내의 움막집에서 나와서 코사니 상가 언덕에 자리한 힌두 사원으로 향했다. 락시미 아쉬람 학교의 부럼 선생이 수행자를 꼭 한 번 만나보라고 추천한 곳이었다. 힌두 수행자 요기가 그 사원에서 지낸다고 했다. 부럼 선생이 영적 스승으로 따르고 있다는 요기는 한 겨울에도 맨발로 다녔다. 사원을 찾는 사람들의 보시금을 학교에 기부해 어렵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열댓 살쯤 먹은 인도 아이 셋이 다가왔다.
"헤이! 20루피!""노!"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이번에는 10루피를 요구했다. 20여 일 동안 코사니에서 머물면서 거지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녀석들은 인도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냥하는 거지가 아니었다. 아주 평범한 동네 꼬마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가 거지냐! 돈 달라고 하지 마! 아주 나쁜 버릇이야!"내가 불같이 화를 내자 녀석들은 뒷걸음질 치며 저만치서 주먹을 내보인다. 그리고는 힌두어로 욕 같은 것을 내던져 놓고 골목길로 사라진다. 녀석들은 평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손을 내밀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몇 푼의 루피를 얻었을 것이다.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기 힘들지만, 조만간 관광 철이 돌아온다. 그러면 델리의 부자들이며 외국인들이 몰려올 것이다. 아이들은 그들 앞에 손을 내밀며 "10루피!" 하고 요구할 것이다. 관광객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아이들에게 돈을 건네줄 것이다. 녀석들은 누군가에게 습관처럼 손을 내밀고, 돈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 오늘처럼 분노할 것이다. 그 '10루피의 분노'는 생각 없이 '10루피'를 건네주는 사람들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겠지.
사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출타한 요기를 기다리며 나무 그늘 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호흡을 고르고 있는데 남루한 옷차림의 중년 사내가 앞에서 머뭇거렸다. 뭔가 말을 걸고 싶은 듯했다. 그의 옷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옷보다도 더 남루해 보였다. 신발은 다 떨어졌다. 얼굴은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네팔 사람입니까?""예."이곳 코사니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네팔 노동자들이었다. 막노동하는 네팔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자 없이 국경을 넘어온다. 이른 3월에 인도로 들어왔다가 겨울이 시작되기 전인 9월에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내 앞에 불쑥 나타난 남루한 중년 네팔 사내 또한 막노동꾼으로 인도에 왔을 것이었다. 그는 뭔가 내게 요구하고 있었지만 자꾸 말을 흐렸다. 그 말이 네팔어인지 힌두어인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영어는 아니었다. 그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그는 내게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면서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혹시나 싶어 앉은 자리 옆에 놓여 있던 지갑이 든 천 가방을 슬그머니 무릎에 올려놓았다.
"당신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내가 아무 말도 못 알아듣겠다며 딴전을 피웠다. 그러자 그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곁눈질로 보았다. 그는 허리가 굽어 있었다. 아마 며칠 전부터 일당벌이가 없어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 같았다. 또한 저 비실비실한 체력으로 당장 어떤 일도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마 노동자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온갖 상상을 해가며 눈을 감았지만 그럴수록 그의 허기진 모습이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왔다. 그가 뭘 원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음에도 모르는 척한 것이 자꾸만 걸렸다. 지갑에서 100루피를 꺼내 들고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는 그를 불러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