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오노라와 아들이뇰로 브론치노,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그녀의 아들 조반니의 초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독재적 정치를 펼쳤던 코시모 1세의 아내 엘레오노라와 아들의 초상으로 브론치노 특유의 매끄럽고 화려한 인물묘사가 돋보입니다.
박용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초상화. 브론치노란 이름은 생소해도 이 그림,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그녀의 아들 조반니의 초상>은 어느 정도 낯익은 그림일 것입니다. 매너리즘 회화의 스승인 폰토로모의 영향을 받은 브론치노는 코시모 1세(국부인 코시모 데 메디치가 아니라 로렌초 메디치의 증손녀의 아들로 메디치가 독재 체제를 구축한 지도자)의 궁정 화가로 많은 경력을 쌓았습니다. 이 그림 <엘레오노라와 아들의 초상>도 코시모 1세의 부인이었던 엘레오노라와 아들인 조반니의 초상입니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는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무표정한 얼굴에, 견고하고 얼음 같은 자태.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옷차림과 장신구에 고상하고 우아한 품위까지. 바로 곁에 있는 코시모 1세의 딸, <비아 데 메디치의 초상>과 함께 매너리즘 초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토록 섬세하고 깔끔한 초상화이건만 왠지 모를 우울함, 차가움이 배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전성기 르네상스를 막 지난 16세기 중엽의 피렌체의 주인은 여전히 메디치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대한 부와 나름의 정치력을 바탕으로, 스페인 왕가와 정략 결혼에 성공하고 피렌체의 권력을 거머쥔 코시모 1세는 이전의 메디치가 지도자들과 달리 스스로를 황제처럼 생각했지요.
앞서 밝혔듯이 '베키오 궁전'을 사유화하고 행정 건물인 '우피치'를 만든 것도 코시모 1세였습니다. 그런 코시모 1세가 브론치노에게 메디치 가문의 초상화를 그릴 것을 명령합니다. 결국 브론치노의 그림은 피렌체 시민들을 억압하고 독재적 지배 체제를 구축한 메디치 가문에 대한 신격화 작업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니 이토록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이토록 냉정하고 우울한 인물상이 그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코시모 1세에게도 아픔이 있었으니 바로 그림의 주인공 조반니가 19세의 어린 나이에 병사하고 아내인 엘레오노라도 한 달 후 역시 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아내의 연이은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코시모 1세는 아들에게 대공의 자리를 물려주고 두문불출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