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탄생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서풍 제피로스의 입김에 의해 사이프러스 해안으로 밀려온 비너스. 꽃의 여신 플로라가 그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신플라톤주의라는 조금은 어려운 사상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 미술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입니다.
박용은
마음 놓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다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 미(美)를 향한 의지, 그것은 지상에서 미를 구현하겠다는 예술가들의 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외면 받았던 이교도(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의 아름다움(미)에 대한 탐구는 자연스러운 행위이고, 그 아름다움을 부활, 재생(르네상스)시키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지 않고, 오히려 신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죠.
이야기가 복잡하고 어려워졌지만 조금만 더 이어보면 이렇습니다. 비록 이교도적이고 세속적인 아름다움이지만 그 속에는 신의 섭리와 사랑이 담겨 있고, 예술은 그 이교도적이며 세속적인 아름다움에 알레고리(은유)란 형식을 입혀 신의 섭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말하자면 피치노의 신플라톤주의는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종교적 엄숙주의에서 살짝 벗어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첫날,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만났던 티치아노의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도 그렇고, 이 작품, '마니피카트의 성모'를 비롯한 보티첼리의 초기 작품들에는 바로 이런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신플라톤주의의 정점에 있는 두 작품을 만나보겠습니다. 먼저 '비너스의 탄생'입니다. '마니피카트의 성모' 바로 옆에 있는 '비너스의 탄생'. 피렌체 르네상스의 상징이기도 한 이 작품은 보티첼리가 정신적 평화를 누리던 시절, 피에르 프란체스코 메디치의 카스텔로 별장을 장식할 목적으로 제작한 그림입니다.
비너스는 그림 왼쪽의 서풍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꽃의 여신)가 내뿜는 꽃바람에 떠밀려 이제 막 사이프러스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오른쪽의 풍성한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계절의 여신 '호라'(Hora. 혹은 로마 꽃의 여신 '플로라'). 그녀는 비너스의 알몸을 가려주려는 듯 서둘러 빨간 망토를 들고 달려가고 있죠.
그리고, 화면 중앙, 커다란 조가비 위에서 특유의 베누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 자세로 서 있는 비너스. 베누스 푸디카 자세를 유지하려다 보니 그녀의 목은 너무 길어졌고, 어깨는 또 너무 가파르며 왼팔은 그 어깨에 이상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비정상적인 몸매는 아름답게 흩날리는 금발과 함께 절묘한 곡선과 율동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물들은 알베르티의 '회화론'에 제시된 원칙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푸른 색 옷을 입고 있는 제피로스, 녹색 옷의 클로리스, 흰 옷을 입고 붉은 색 망토를 들고 있는 호라. 그리고 하얀 알몸과 금발의 비너스, 제피로스의 입김에 분분히 흩날리는 분홍빛 꽃들까지. 황홀한 색채의 향연은 그림 전체에 화려함을 더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