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성동구치소. 소년을 면회하고 나오자 봄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년의 인생에도 봄은 올까?
조호진
3년 전.
성동구치소 접견실에서 열일곱 살 소년을 면회했어요. 가로막은 아크릴 차단막 너머엔 감색 수의(囚衣)를 입은 소년이 나타났어요. 깡마른 몸과 이국적인 얼굴, 소년의 눈빛엔 원망과 슬픔이 서려 있었어요. 소년은 자신이 다녔던 중학교 담벼락에다 화염병 투척 실험을 하고 자신이 사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다섯 번이나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됐지요.
소년은 열일곱 살 인생 동안 주목받은 적이 전혀 없었는데 갑작스레 주인공이 됐어요. 당시 방송과 신문 등이 연일 대서특필한 것은 다문화와 왕따 문제가 사회 이슈였기 때문이었지요. 소년은 경찰 조사에서 "저는 분명 한국 사람인데 주변에선 한국 사람도 아니고 러시아 사람도 아니라고 해요, 그러면 저는 반쪽짜리인가요?"라고 말했답니다. 왕따당한 다문화 소년이 저지른 연쇄방화, 언론은 비극의 흥행을 노렸을 겁니다.
불행한 가족사도 큰 몫을 했을 거예요. 러시아 엄마와 한국 아빠를 둔 소년은 1995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2년 뒤에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왔어요. 그런데 공산당 간부의 딸이었다는 소년의 엄마는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떠나버렸어요. 소년의 아빠는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다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요. 그런데다 소년을 돌보던 할머니는 가출한 손자를 찾아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이 비극, 이 고통, 이 슬픔을 소년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요?
언론이 대서특필하자 각계 인사들도 관심을 쏟았어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영화감독은 소년의 가족사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어떤 선교사는 소년을 선교지로 데려가서 공부시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헛바람으로 끝나고 말았어요. 언론의 대서특필이 평지풍파를 일으킨 뒤 잠잠해지자 그들도 무관심으로 돌아섰지요. 값싼 자비와 관심은 그렇게 끝나더라고요.
소년의 인생은 '놀림'과 '왕따'의 인생이었지요. 어렸을 때는 '쏘련놈'이라고 놀림을 당했답니다. '쏘련'을 아십니까? 소련(蘇聯)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약칭으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였지요. 그러다 1991년 연방이 해체되면서 러시아가 됐지요. '쏘련놈'이라는 놀림과 왕따에 시달린 소년은 우울증에 걸렸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소년은 고통을 주는 학교와 외로운 집을 탈출해서 노숙인들과 함께 지냈어요. 버려진 소년은 버려진 어른들이 편했던 거지요.
소년은 철수라는 이름의 노숙인을 아빠라고 불렀어요.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 '아빠', 아빠라고 부르니 기분이 좋아져서 아빠, 아빠 하고 따라다녔다고 하네요. 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도 있어요. 그 이름은 '엄마', 엄마의 'ㅇ'(이응)만 발음해도 기분이 우울해지기 때문에 소년에게 엄마란 이름은 금기어랍니다.
소년은 노숙인 아빠에게서 술을 배웠어요. 하얀 액체를 마시면 슬픔은 사라지고, 알딸딸한 불콰함이 소년을 구름에 태워주었어요. 그래서 술과 금방 친해졌어요. 술과 친해진 소년은 술값 마련을 위해 폐품을 줍고, 폐품을 팔아서 소주와 컵라면을 사고…. 그러다가 할머니에게 붙잡혀 귀가하고 또 가출하기를 반복했어요. 2011년 여름, 소년은 급한 소식을 접했어요.
"너의 할머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가출한 너를 찾으러 다니다가~!"할머니의 사망으로 소년이 귀가하자 철수씨는 다시 혼자가 됐어요. 그러던 2011년 겨울, 얼어 죽었다고 하네요. 노숙인 아저씨들에게 이렇게 전해 들었다며 저에게 말해주었어요. "거적 같은 것에 덮인 김철수, 거적을 제대로 덮지 않아 삐져나온 너의 아빠의 때 묻은 발가락을 봤다"라고요.
소년과 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