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일기27화 농성장에서 시작된 또다른 인연이란희감독과 콜밴, 콜밴 주연의 단편 영화 시나리오 구상을 하며
최문선
추위가 완전히 물러난 후 김경봉 조합원은 천막에 놓여있던 난로를 치우고 그 자리에 커다란 테이블을 만들어놨다. 버려지거나 쓰임새를 잃은 농성장의 이런저런 목재들을 활용한 것이다. 테이블 위에는 농성장에서 즐겨하던 보드게임 판이 그려져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농성자들과 친숙하게 연대해온 사람들은 하루 일정이 끝난 늦은 시간에 보드 게임을 즐겼다.
김경봉 조합원은 합판에 페이트 칠을 하다 그 양이 모자라 다른 색을 넣으려 했고, 그러다 보니 보드게임 용 밑그림을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칠이 마른 후 농성장의 몇몇 지인들은 김경봉 조합원이 나눠둔 칸칸 마다 보드게임의 룰을 매직으로 그려 넣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 보드게임을 즐기는 일은 없었다. 농성장을 찾는 발길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두런두런 모여 수다 떨며 게임을 하다 막차 시간에 맞춰 농성장을 빠져나가던 방문자들의 그 모습이 김경봉 조합원은 많이도 그리울 것이다.
임재춘 조합원은 몇 주 전 젊은 시절 그의 첫 기타 회사였던 성음악기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날 임재춘 조합원은 내게 이 싸움이 캄캄하고 답답해 그곳에 간다고 했다. 한때는 그도 그곳의 일원이었고, 그 곳의 사람들과 동료애를 나눴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자신과 그들의 삶을 비교했을 것이다. 왜 회사를 옮겨서 이 모양이 되었나, 후회했을 것이고, 왜 대전에서 인천까지 따라와 농성을 했나, 그냥 오라는 회사를 갈 걸 후회했을 것이다. 그 후 임재춘의 농성 일기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 갔다. 초고에는 박영호와의 악연이 얼마나 자신을 고통에 빠뜨렸지 폭로하고 또 폭로했다. 지금 자신은 옛날 좋은 인연을 잃고, 그나마 연대하던 사람들도 이제 사라져가니 이처럼 허무할 수 없다고, 이게 다 돈 때문이고 박영호 때문이라는... 한이 가득한 말을 털어놓곤 했다.
농성 이래 함께 싸우던 동료들은 꾸준히 떠나갔고, 떠나가는 사람들의 처지가 빤하니 붙잡지 않으며 인연의 끝에 익숙해졌다. 지지와 연대로 맺어지는 인연도 생겼지만, 이제까지 남은 인연보다 잊히는 인연이 더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달리거나 서운해 하지 않는다. 농성자들이 보여주는 그 담담한 태도는 아무래도 학습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임재춘 조합원은 콜트-콜텍 공장에서 만난 미술인들과의 인연이 깊게 새겨졌다 말한다. 김경봉 조합원은 인천의 모 단체에 있는 'T'라는 사람이 가장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두 농성자들이 깊은 인연으로 기억하는 그들은 일로 맺어지기 전에 모두 이웃처럼 다가왔고, 식구처럼 곁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먼저 전화해서 한 번 오라고, 왜 이제는 오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건 어떠냐고 내가 묻자, 임재춘 조합원은 "부담줄까 봐, 미안하잖아"라고 했다. 김경봉 조합원은 "부담 준다는 이유로 아무 말 없는 거, 그게 우리의 문제고, 한계야"라고 말했다.
농성장을 떠나는 인연이 더 많지만 여전히 새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올 초부터 이란희 감독은 콜텍의 세 농성자(김경봉, 이인근, 임재춘)와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인천 사람인 이란희 감독에게 농성자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이웃이 생기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란희 감독에게 이웃은 '보이지 않아도 생각하는 존재'다.
"멀리서 아는 콜밴(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만든 밴드)은 내게 스타였어요. 그러다 그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그들의 민낯을 보게 됐고, 그들이 멋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속사정에는 인간의 문제가 어김없이 있었죠. 속사정이란 말 속에 있는 그 인간 문제를 새삼 다시 깨닫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게 이 분들과의 인연으로 생긴 저의 변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