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위해 DMZ 건너가요!'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위민크로스DMZ 행사를 참가하기 위해 북한에서 육로로 방한한 세계여성운동가들과 시민들이 '평화통일 기원 조각보'를 함께들고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이희훈
서: 위민크로스 DMZ 참가 인사의 북한 찬양 오보는 두 분단권력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에 불과하다. 여기서 서로 체제가 다르고 전쟁까지 한 당사자들 사이에서 일방이 다른 일방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대단히 신중해야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말할 때는 쉽게 역효과가 생긴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냉전시대 때 유럽에서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체제 경쟁 하에서도 역내 안정과 공동안보를 추구할 수 있었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가능했던 것도 상호 체제존중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975년 8월 1일 미국, 캐나다를 포함해 유럽의 35개국이 헬싱키협정을 채택하고 이후 헬싱키 프로세스를 전개하였다. 헬싱키협정에 포함된 참가국들 간 관계를 규정하는 10대 원칙 중 공산권의 인권개선을 겨냥한 제7원칙은 공산권이 중시한 주권존중, 영토적 통합성, 자결권 원칙 등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익균형 구도 속에서 상호 존종 하에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틀을 짤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북한인권문제를 말할 때 헬싱키 프로세스를 자의적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은 이런 헬싱키 프로세스의 틀과 조건 조성에 대해서는 눈감는 경우가 있다. 북한인권 이야기를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하지만, 적대하는 분단체제 하에서 서로 체제를 존중하고 화해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방향으로 적대관계를 유지하면서 한쪽의 인권문제를 일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평화와 인권이 상호의존적으로, 순방향으로 병행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헬싱키 프로세스에서 적어도 정부 차원에서는 상대방의 인권문제는 나중에 다루고 인적 접촉(human contact)을 먼저 진행하며 신뢰구축을 통해 인권문제를 논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나갔다.
지금 남북은 서로 화해나 접촉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남한이 북한인권문제에 집중해 북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인권정치는 강화될지언정 실질적 인권 개선에는 도움이 안된다. 말하자면 한반도 같은 장기분쟁지역에서 인권과 평화의 우선순위, 둘의 병행추진의 조건 같은 문제가 중요한 연구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안: DMZ를 건넌 우리들은 앞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해 법적인 검토를 하는 팀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쿠바와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를 결정했는데 법적인 전환이 동반될 것이다. 양국의 관계정상화 결정 과정에서 교황이 카스트로를 만나 측면 지원한 사례, 곧 정직한 중재자 역할도 참고할 만하다.
남북한에 대사관을 개설하고 있는 스웨덴 같은 나라의 중재 역할도 중요하다.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지원하는 일을 전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국제 법무팀을 만들고 워싱턴DC에서 행동을 조직하도록 하겠다. 이 일에 DMZ를 건너지 못했지만 한반도 평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의 고립을 초래하고 있지만 북한 인권 개선을 비롯해 어떤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평양에서 유엔 관리를 만났는데 그는 북한에 있는 모든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북한에 제재를 가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만 유일하게 그렇게 하려고 한다. 앞으로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일에 힘을 쓰겠다.
서: 한국에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에서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특히 2007년 비핵화 프로세스와 남북관계 발전이 선순환적으로 발전할 때 그런 논의가 활발했다. 평화통일운동단체와 학자들 사이에서 평화협정안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핵심은 당사국들 사이에 정전 상태를 평화 상태로 바꾸는 실질적인 조치다. 정전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데 당사자가 중요하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체제의 당사자가 남북을 포함해 3자 또는 4자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3자일 경우 남북미, 4자일 경우 남북미중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평화협정을 가져오기 위해서 적어도 한국이나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을 향한 결정적인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2007년 6자회담이 진전되고 남북한 관계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평화협정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논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큰 틀에서는 북한 핵문제의 근본원인인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적대관계의 정상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 등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김정은 체제 들어서서 3차 핵실험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자처하고, 그에 대응해 미국은 북한에 제제를 높이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북한문제를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이 고리를 풀기 위해서 남북한 관계 개선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 위민크로스 DMZ 사절단처럼 국제사회의 건설적 중재도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호혜적인 방향으로 관계 개선하는 노력 없이는 제3자의 역할이나 법적인 논의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오는 모든 사람과 말은 북한 비판과 국내정치적 이용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 결국 남북한 주민의 삶의 질, 안전, 복지는 희생된다. 안보, 평화문제에 시민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관협력은 평화문제에도 적용된다. 결국 남북한과 미국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두 개의 분단 장벽을 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