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직장인들 허리휜다?한 취업포털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월 기념일 비용'으로 평균 50만원을 계획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보도한 <머니투데이> 5월 1일자
머니투데이
이번에도 한 고개를 잘 넘겼다. 어린이 날도 어버이 날도 아무 탈없이 무사히 넘겼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집이라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우리처럼 빠듯한 살림살이라면 '무슨 무슨 날'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사주고 싶은 것, 해드리고 싶은 게 왜 없겠냐만은 풍족하게 할 수 없다는 게 아이들에게, 부모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은 몇 년째 동결된 상태다. 드리면서도 민망한 마음에 '나중에 여유 생기면 더 많이 드릴게요'라는 애교의 메시지를 꼭 남겨야 한다. 더 많이 드리고 싶지만, 더 좋은 것 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5월 초 긴 연휴를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은 사실은 어린이 날 선물을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날 파티만으로 충분히 어린이 날을 지낼 수 있었는데 큰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어린이 날은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인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보는 눈이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만큼 커진 것이다. 누나의 생각이 달라지니 동생은 '얼씨구나 좋다'하며 같이 달라졌다.
올 해도 모르는 척 넘기고 싶었으나 놀이터에서 겪고 있는 아이들의 쓸쓸함을 알게 된 후로는 이번만큼은 모르는 척 할 수 가 없었다. 일단 놀이터에서는 최신 유행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왕(?)이 된다. 그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리고 그 비슷한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그룹을 만든다.
장난감 주인이 인심 좋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다음에는 최신 장난감을 만져보기 위해서 애타는 기다림이 필수가 된다. 운이 좋으면 가지고 놀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 순서를 기다림으로 끝날 경우가 있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쨌는지 기다림에 지친 큰 아이는 자기가 가지고 나온 줄넘기를 하며 그 주위를 맴돈다. 그보다 속없는 작은 아이는 기다림 끝에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 모습을 몇 번 지켜본 나로서는 이번에도 눈 감고 귀 닫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큰 맘먹고 손잡고 간 마트에서 아이들이 고른 장난감은 '헉'소리가 날 정도다. '이 사람들이 부모를 봉으로 아나'싶다. 눈치가 있는지 큰 아이가 고른 건 2만 원이 조금 넘었다. 작은 아이가 고른 건 만화로 방영이 되면서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장난감이었다.
오랜 품절 끝에 어렵게 발견하기도 한 것이어서 나 역시 신기하긴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 돈으로 중고서점에 가서 책이나 몇 권 샀으면 좋으련만 내 속을 알지 못하는 작은 아이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카드를 건네는 내 손은 살며시 떨렸다.
기죽이지 말아야지... 고가의 장난감은 누굴 위해 사준 것인가그러면서 지난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고 내게 일러줬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역시 아이들 주변에는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일본제 공룡변신로봇은 품절사태를 거듭하면서 20만 원을 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과 5개월 만에 20만 원이 넘던 그 장난감은 아이들 기억 속에서 이름조차 지워졌다. 5만 원을 넘게 주고 산 우리 아이의 이번 장난감의 유통기한은 얼마만큼일까?
말귀를 알아듣는 큰 아이에게 '너의 인생을 살라'고 얘기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네가 생각하는 진짜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건 사실 아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놀이터에서 쓸쓸히 돌아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이번만큼은 기죽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사준 장난감을 보면서 과연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 우리 가족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질문의 끝에 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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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안 지났는데 '초과' 지출... 등골 휘는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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