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공개된 조선중앙 TV <계월향>의 한 장면.
텔레비전극 창작단
그 기간의 어느 시점에 계월향은 일본 장군의 신뢰를 얻었다. 그는 그런 신뢰를 이용해서 일본 장군에게 외출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평양지>에 따르면, 그는 "친척이 보고 싶습니다"라며 "서문 쪽에 갔다 올게요"라고 말했다. 갔다 온다고 말은 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아예 안 돌아올 수도 있었다.
외출 허가를 받은 계월향은 평양성 서문 쪽으로 갔다. 그곳 성벽에 올라보니, 성에 못 들어온 백성들이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문 밖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계월향은 그들을 향해 "우리 오빠 어디 있소?" 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외침은 친오빠를 찾는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기를 도와줄 남자를 찾았던 것.
이때 계월향의 눈앞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김경서 장군전>의 주인공인 김경서가 바로 그 남자였다. 아명이 김응서인 김경서는 첩보 활동에 일가견이 있는 장교였다.
김경서는 평안도 용강현 출신이다. 그래서 평양 기생 계월향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 수도 있다. 당시 기생들은 주로 관리들만 상대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정확한 실상은 파악할 수 없다.
성벽 위에서 외치는 계월향을 향해, 김경서는 성벽 밑으로 접근했다. 일본군이 듣지 못하게 계월향과 대화하려면 성벽 쪽에 바짝 붙어야 했을 것이다. <평양지>에 따르면, 계월향은 다가온 김경서에게 "여기서 저 좀 빼내주세요"라며 "목숨을 다해 은혜를 갚을게요"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김경서는 자기를 성 안으로 들여보내주면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굳게 약속했을 것이다. 이에, 계월향은 일본 병사들에게 "저 사람은 제 친오빠이니까 성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조선 장교 김경서가 평양성에 잠입하는 순간이었다.
성 안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작전을 짰다. 한밤중에 만나 일본 장군을 죽이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고 나서 계월향은 일본군 숙소로 돌아갔다. 허가를 받고 나올 때만 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을지 모를 그곳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온 계월향은 일본 장군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벽시계라도 있는 시절 같았으면, 힐끔힐끔 벽이라도 쳐다봤을 것이다. 한밤중이 되자, 일본 장군은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계월향은 조심스레 옷을 주워 입었다. 그러고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적어도 2월 이전의 겨울밤이었으니, 날씨가 꽤 차가웠을 것이다.
약속한 장소에 나간 계월향은 김경서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일본 남자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계월향이 "저놈이에요!"라고 말하자, 김경서가 칼을 뽑아 휘둘렀다. 평양 주둔 일본군의 기둥은 그렇게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