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가 핀 들어느 6월, 유럽의 들판
배수경
독일에 사는 지인이 몇 개월간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내가 잠시 그녀의 집에 머물게 되었었다. 방 3개가 있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그렇게 독일인 여대생인 프란체스카와 한국인 H 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일상의 전쟁이 첫날 부터 세 여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똑 똑 똑 똑 똑! 프란체스카가 H의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한참동안 이어졌다. H가 방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에게 왔다. 이번에는 자신의 샴푸를 말도 없이 가져다 썼다는 것이다.
H가 타인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화가 많이 난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H는 돌아가면서 하는 청소 담당 날에도 아무런 공지 없이 청소를 건너뛰기 일쑤였고, 무엇이든 본인이 편할 수만 있다면 약속도, 책임도 지키려하지 않았다. 이전 학교에서는 쫓겨난 것과 다름이 없었고,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조차 처음에는 잦은 결석으로 선생님께 불려다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