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하늘색 오빠님께' -지은이의 편지학교에 와서도 등굣길 버스에서 스친 오빠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침 2교시 국어 수업시간. 지은이는 선생님 몰래 ‘후아유 하늘색 오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임정훈
'후아유 하늘색 오빠님', 당신은 누구시기에~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여중생 지은(가명)이도 인생의 열다섯 번째 봄날을 맞았다. 벚꽃이 활짝 피어 흐드러진 4월의 어느 날, 등굣길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오빠님'을 보았다. 첫 눈에 마음을 내놓고 말았다. 지은이는 주저 없이 손가락으로 사랑의 하트를 만들어 오빠에게 날렸다. 이어서 최대한 예쁜 표정으로 한 쪽 눈도 찡긋했다. 등교 전 아침에 화장을 하며 붙인 속눈썹이 잘못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마음이 통했는지 오빠도 말없이 손가락 하트를 날려주었다. 지은이는 좋았다. 교복이 아닌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으니 오빠는 분명 중고생은 아닐 터였다(사복으로 등교하는 간 큰 중고생일 수도 있긴 하지만). 중딩인 지은이와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날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지은이는 '후아유 하늘색 오빠'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학교에 와서도 지은이는 등굣길 버스에서 스친 오빠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교실 어디를 둘러봐도 그 오빠 얼굴만 동동 떠다녔다. 마침 2교시 국어 수업시간. 지은이는 연습장 한 장을 정성스레 찢었다. 그리고는 선생님 몰래 '후아유 하늘색 오빠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후아유(의류브랜드명) 하늘색 오빠님께♥ 오라버니~ 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버스에서 오빠에게 하트를 날렸던 귀엽고 이쁜 지은이예요 >-< 어제 저한테 하트를 날려서 너무 좋았어요 ㅎㅎ. 오빠님 또 보고 싶어요. 흐잉. 우리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저는 진짜 너무 좋아서 얼굴까지 빨개졌어요. 정말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어요. 잘하면 저희가 인연일 수도… 꺄아악. 부끄럽다 정말.진짜 그렇게 멋있는 사람은 오빠가 처음이에요. 저희 만나면 벚꽃구경 할래요? 오빠는 언제나 제가 나중이라도 알아볼 수 있게 항상 하늘색 후아유를 입어줬으면 좋겠어요. 헤헹. 그게 힘들다면 맨날 하트를 하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근데 저희 나중에 볼 수 있겠죠? 볼 날을 기다릴게요.♥ - 언제나 오빠 생각인 여신 지은이가. 지은이가 쓴 편지에는 국어 시간에 배운 미사여구의 표현도 없고 간절한 비유법도 없었다. 대신 마음을 쏟은 구구절절한 사랑의 속삭임이 있었다. 그저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오빠가 좋다는데, 좋아 죽겠다는데 그것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
그날 이후 지은이는 내게도 몇 번이나 그 오빠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물론 내겐 그런 재주가 없었다). 등굣길 버스에서 감질나게 스치듯 만난 이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오빠를 목소리라도 들으며 애절함을 달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 지은이의 행동은 거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이라도 오빠를 만나기만 하면 단둘이 손잡고 만개한 벚꽃 거리를 손잡고 거니는 사랑이 이루어질 것 같았던 모양이다. '벚꽃엔딩'을 배경음악 삼아서 말이다.
하지만 지은이와 후아유 오빠의 등굣길 로맨스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후아유 오빠를 등굣길 그 버스에서 만날 수 없었다. 어쩌면 하늘색이 아닌 꽃분홍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서 지은이가 알아보지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마음만 요란했을 뿐 더 다가서지도 물러나지도 못했던 지은이도 시간이 흐르면서 시나브로 마음이 정리돼 버렸다.
지은이가 써놓고도 차마 오빠에게 건네지 못한, 하늘색 펜으로 쓴 고백 편지만이 어설픔과 뜨거움을 간직한 채 지나간 사랑의 증표처럼 남아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