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한스 홀바인 "헨리 8세"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미술관.
박용은
그런데 그림의 주인공, 헨리 8세가 누굽니까? 왕비의 시녀, 앤 불린과의 사랑(혹은 불륜?) 때문에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에게 반발하여 오늘날의 영국 국교회를 성립시키고, 결국은 파문까지 당한 영국 역사상 가장 문제적 군주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영국인들로부터는 실질적으로 오늘날 영국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칭송받기도 하죠. 어쨌든 인물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화가가 없던 당시 영국에서, 한스 홀바인은 단번에 헨리 8세의 눈에 들어 영국 최초의 궁정화가가 됩니다.
한스 홀바인의 그림 '헨리 8세'는 헨리 8세의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림에는 교황에 맞서 수장령을 선포한 후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도 마무리하고(이때 토마스 모어도 죽게 됩니다), 앤 불린과의 골치 아픈 관계도 청산(간통과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의 목을 벴죠)하고, 웨일즈까지 통합해서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헨리 8세의 기세당당함이 잘 드러납니다.
세속 국왕으로서의 화려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실재하는 공간이 아닌 푸른색의 모호한 배경에 그림자까지 생략함으로써 국교회의 수장, 즉 종교 지도자로서의 신성한 면모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상화에서 '전신사조'의 전통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게 아닌가 봅니다.
'헨리 8세'와 가까운 곳에서 나는 뜻밖의 외국인 화가를 또 만났습니다. 전시실 입구 쪽 좁은 벽에 걸어 놓아서 하마터면 모른 채 스쳐지나갈 뻔했습니다. 그는 바로 엘 그레코였습니다.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흔히 스페인 사람으로 알고 있는 엘 그레코는 본명이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로, 베네치아 공화국령이었던 크레타 섬 출신의 그리스인입니다. '엘 그레코'는 당연히 '그리스 사람'이란 뜻이겠죠. 엘 그레코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는 베네치아 편에서 매너리즘과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짧게 그림 소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