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당시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 내역.
김당
이렇게 해서 삼성, 현대차, LG, 롯데의 비자금 조성 및 대선자금 전달 혐의가 회유·압박과 계좌 추적을 통해 드러났다. LG그룹을 시작으로 한나라당의 '차떼기 수법'이 고구마 줄기처럼 불거져 나왔다. 현역의원 23명을 포함해 정치인 40여 명이 검찰의 칼날에 쓰러졌다. 대선자금 수사 대상이 된 정치인들은 대부분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하거나 경선에서 탈락했다. 검찰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일부나마 '정치권 물갈이'가 이뤄진 셈이다.
대통령의 '집사' 최도술과 '동업자' 안희정(62억), 그리고 '형님' 정대철까지 구속되었다. 공식적으로 노무현 대선캠프를 책임졌던 ▲ 정대철 공동선대위원장(9억 원)과 ▲ 이상수 총무위원장(17억 원) ▲ 이재정 유세본부장(10억 원) 등이 불법정치자금 수수 및 전달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선 ▲ 김영일 사무총장 겸 선대위 총괄본부장(700억 원) ▲ 최돈웅 재정위원장(580억 원) ▲ 서정우 대선후보법률특보(575억 원) 등이 같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노무현 측근 비리 조사했던 문무일이 이번에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 맡아
그때도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제시와 '편파 수사' 시비가 있었다.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반성한다"면서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밝혀낸 불법자금 총액의 편차(이회창 캠프 823억 원 vs 노무현 캠프 113억 원으로 1/7) 자체가 '편파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검사' 반열에 오른 안대희 중수부장은 대법관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내정되었으나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했다. SK 비자금 수사로 대선자금 수사의 물꼬를 텄던 이인규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검 중수부장에 기용돼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으나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검찰을 그만뒀다. 당시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팀에 파견돼 안희정·이광재·최도술을 조사했던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이번에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이번 특별수사팀은 2003년 대선자금과 측근비리를 수사한 대검 중수부·특검팀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문무일 검사장은 첫날 수사팀의 명칭을 '경남기업 의혹 관련 특별수사팀'으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대선자금 의혹이 나오면 수사하나'라는 질문에는 "수사 대상과 범위에 대해 한정을 짓고 있지 않다"면서 "일절 좌고우면 하지 않고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가 '2012년 대선자금 불법 모금사건'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물론 정치자금이든 뇌물이든, 공여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에는 난관이 예상된다. 그러나 공여자가 액수를 적은 메모와 구체적 정황을 담은 인터뷰(경향신문)에 이어, 만난 사람과 시간·장소를 기록한 비망록(Jtbc 보도)이 나왔다.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서 불거진 '찌라시 수준의 문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검찰은 이미 경남기업 비리 의혹 수사에서 법인자금 32억 원이 현금화된 사실과 이를 입증해줄 증거(USB 기록)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의 '금고지기'였던 경남기업 재무책임자와 중간 전달자, 그리고 현장에 함께 간 수행 비서의 증언과 공여 대상자에 대한 계좌추적이 이뤄지면 수사의 가닥이 쉽게 풀릴 수 있다.
노무현과는 '결'이 다른 살아있는 권력문제는 수사 대상이 노무현 정부 때와는 결이 다른,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점이다. 취임 초부터 검찰의 독립성을 주문한 노 대통령은 2003년 당시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지만 결국 검찰 수사에 멍석을 깔아줬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성역없는 수사'를 지시했다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검찰총장이 '혼외자 문제'로 내몰리는 것을 검찰과 국민은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더구나 수사 대상은 전·현직 비서실장 3인(허태열, 김기춘, 이병기)과 2012년 대선캠프의 핵심 본부장 3인(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그리고 국정을 통할하는 현직총리(이완구)이다. 이들 7인은 모두 '친박' 정치인이다. 한 건이라도 불법자금 수수 사실이 확인되면 박근혜 정부 최악의 정치적 부패 스캔들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한나라당 대표 경선 자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오히려 이번 수사의 '깍두기'(별건) 취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