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만개한 도시로 관광 오라"후쿠시마역에 설치된 후쿠시마 홍보 부스 모습이다. '복이 만개한 도시로 관광 오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 있다.
김혜정
후쿠시마가 위치해 있는 일본 동북지역은 벚꽃과 복숭아로 유명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벚꽃이 오랫동안 피어 봄이면 복이 만개한다고 불리는 도시다. 하지만 지난 2011년 3월 11일 벚꽃이 필 무렵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 복 받은 도시서 재앙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사고 발생 4년이 지난 올해 3월 11일 도쿄를 거쳐 후쿠시마에 도착했다.
기차가 후쿠시마역에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눈이 내렸다. 방사능에 오염된 눈일까 의심이 된다.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우산을 쓴 사람은 없다. 거리도 마찬가지. 몸을 피하는 이들이 없다. 대신 기차역 곳곳에 관광 홍보 포스터가 내걸려 있고 대합실 TV에선 홍보 영상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복이 많은 섬 후쿠시마, 벚꽃 피는 복이 만개한 계절이 되었으니 관광 오라.'방사능에 오염된 재앙의 도시가 복이 많은 도시라니.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본 정부와 지방정부의 홍보정책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일본 지배층이 내세우는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미래가 중요하다'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정치선전)가 일본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것일까. 원전 4기가 폭발해 방사능 대재앙이 일어난 지역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후쿠시마 곳곳엔 관광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 문득 지난 2월에 발생한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의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방사능 오염수를 고의적으로 바다에 유출하고 은폐하다가 10개월 뒤에 발각됐다. 제1원전 2호기 배수로의 오염수를 측정한 결과 방사성 물질 세슘137(Sc-137)이 리터당 2만3000베크렐(Bq/L), 세슘134(Cs-134)가 리터당 6400베크렐(Bq/L) 등으로 나타났다(식품위생법상 방사성세슘 기준치는 킬로그램당 100베크렐).
도쿄전력은 지금도 폭발한 원전의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매일 400톤의 냉각수를 퍼붓고 있다.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로 바뀐 냉각수는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탱크에 담기거나 지하수 또는 바다로 흘러들어가 결국 200km 이상 떨어진 도쿄의 해안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육상에서는 사고원전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이 공기 중에 섞여 원전에서 50km 떨어진 지역까지 뻗어나갔다. 지금도 이들 지역은 고농도 오염지역으로 분류돼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12만 명 이상의 주민은 난민이 돼 후쿠시마현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화가 난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 정보는 후쿠시마 사고를 '과거' 일로 치부하고 '후쿠시마 부흥정책'을 펼치고 있다니. 후쿠시마산 모든 쌀에 대해 방사능 조사를 실시하고 다른 농산물도 엄격히 검사하고 있다고 선전에만 안간힘을 쓰고 있다니. 갑자기 후쿠시마산 복숭아와 사과, 배를 원료로 만든 과일음료들로 채워진 홍보 포스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머리가 아프다.
방사능오염 여전한데 관광 오라니... 화가 난다
다음 날(12일), 사고 현장으로부터 가까운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이 잡혔다. 복잡한 심정을 다스리며, 이이다테촌(飯館村)과 나미에정(浪江町)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두 지역은 원전사고 후 각각 거주제한구역과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으로 나뉜 도시다. 하지만 두 지역 모두 차례로 귀환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나미에정에 다다르자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을 걷어낸 거대한 검은 포대가 산처럼 쌓여 있다. 제염작업자와 굴삭기를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하기 어렵다. 사람이 떠난 공간을 방사능이 채운 도시, 그야말로 유령마을이다.
여기서 잠깐, 나미에정 마을과 일본 정부의 주민귀환정책에 대해 알아보자. 나미에정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서북방향에 위치한 지역이다. 사고원전에서 가깝게는 4km, 멀게는 30km까지 펼쳐져 있다. 나는 원전사고 이후 세 번째 후쿠시마를 방문하지만 이곳은 첫 방문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정부의 귀환정책 때문이다. 나미에정 일부 지역이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으로 지정돼 외부인도 출입이 가능해졌다. 일본 정부는 내년부터 나미에정 주민들을 귀환시킬 계획이다.
앞서 2012년 일본 정부는 주민귀환정책을 실시, 피난지시지역을 3개 구역으로 재정비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연간 방사능 피폭선량이 20밀리시버트(mSv/h) 이하인 지역은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 피폭선량이 20~50밀리시버트(mSv/h)인 지역은 거주제한구역, 피폭선량이 50밀리시버트(mSv/h) 이상인 곳은 장기귀환곤란구역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