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의 <류성룡 졸기>에서는 류성룡(김상중 연기)이 직간(直諫)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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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주군인 선조 임금을 잘 보좌해 나라를 지켜낸 류성룡. 그는 선조 임금의 1급 참모였다. 이에 그가 어떤 면모를 가진 신하였는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현재까지의 방영분을 기준으로 할 때, KBS 주말 드라마 <징비록>에서 보여준 류성룡의 대표적 면모 중 하나는 임금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충직한 신하의 모습이다. 일례로, 지난 2월 22일 방송된 제4회에서 류성룡은 공안 사건인 정여립 역모 사건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것이 조작 사건일 줄 아시면서도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용하셨습니까?"라고 임금에게 따져 물었다.
선조가 "이토록 참담하고 방자한 질문을 하느냐!"고 인상을 찌푸리자, 류성룡은 "죽음을 각오하고 진언하는 것"이라며 강인한 의지를 표출했다. 그러자 선조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누가 과인한테 이렇게 말하겠느냐?"며 두터운 신임을 표시했다. 이런 장면에서 나타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충언하는 담대한 참모의 모습이다.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충언했으니 '임금을 보좌해서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것도 가능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딘가 좀 이상하다. 충언하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충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찌 보면 더 대단하다. 그러므로 죽음을 각오하고 충언하는 신하를 옆에 두는 군주는 충언을 수용할 줄 아는 포용력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선조가 그런 임금이 아니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기보다 인기 있는 이순신·김덕령 장군을 투옥한 사실이나 마음에 안 드는 아들 광해군이 전쟁 지휘를 잘하자 일부러 광해군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든 사실 등에서 잘 드러난다. 선조는 마음이 그렇게 넓은 군주가 아니었다.
그런 인물에게 "조작 사건일 줄 아시면서도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용하셨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질문의 당사자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런 점을 생각하면, 드라마 속의 류성룡이 보여주는 면모가 실제 기록과 얼마나 일치할까 하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와 역사 속 류성룡, 어떻게 다를까 류성룡이 선조 앞에서 어떤 면모를 취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류성룡의 생애를 정리한 <류성룡 졸기>가 그것이다. 이 기록은 북인당 정권(동인당 분파)이 광해군 집권 기간에 남긴 <선조실록>과, 광해군의 북인당 정권을 전복한 서인당 정권이 남긴 <선조수정실록>에 각각 수록돼 있다. <선조실록> 수정판인 <선조수정실록>은 인조 '쿠데타'(인조반정)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서인당이 과거사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에서 편찬한 것이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편찬 주체는 서로 다르다. 앞엣것을 편찬한 북인당과 뒤엣것을 편찬한 서인당은 상호 적대적 관계였다. 하지만 두 실록에 수록된 <류성룡 졸기>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뒤의 것이 좀 간략하다는 점과 표현상의 강약이 있다는 점만 빼면, 류성룡에 대한 평가는 앞엣것이나 뒤엣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류성룡 평가에 관한 한 각 당파의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류성룡을 직접 겪어본 세대가 그에 관해 대체로 일치된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두 실록에 수록된 <류성룡 졸기>에 따르면, 실제의 류성룡도 이따금 선조 임금에게 충고를 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처럼 충고를 하지는 않았다. 그가 충고하는 방식은 드라마와는 판이했다.
<선조실록>에 수록된 <류성룡 졸기>에 따르면, 류성룡은 아주 극진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금에게 충언을 했다. 일반적으로 선비 출신의 관료들은 임금에게 충고할 때 강직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류성룡은 그런 태도가 아니라 극진하고 겸손한 태도로 임금의 잘못을 지적했다. <징비록> 제4회에서처럼 목숨을 걸고 성토하는 게 아니라, 아주 부드럽고 낮은 자세로 임금의 잘못을 지적했던 것이다.
또 류성룡은 충고를 하긴 했지만, 임금의 결정적 약점은 지적하지 않았다. <선조실록>의 <류성룡 졸기>에서는 류성룡이 직간(直諫)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선조수정실록>의 <류성룡 졸기>에서도 그가 임금에게 바른 대로 고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기록을 보면, 류성룡은 임금에게 충고를 하기는 했지만 임금이 받아들일 만한 충고만 하는 신하였다. 어떤 경우에도 치명적 약점은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임금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에서만 극진하고 겸손하게 충고하는 신하였다.
류성룡의 맞춤형 대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