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도지 정원 안내판삔우린의 아픈 식민의 역사, 이곳은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군의 휴양도시였다.
전병호
식민의 역사도 있지만 미얀마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독립운동의 역사도 있다. 1930년대 들어 미얀마의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 산 장군이었다. 아웅 산 장군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고자 일본과 손잡고 영국군과 싸워 물리쳤다.
하지만 일본은 제국주의 속내를 드러내며 미얀마 곳곳을 폭격하고 미얀마를 점령한다. 또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기간은 영국보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훨씬 악랄하게 핍박해, 미얀마인들에게 분노와 치욕을 느끼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으로 죽였고 많은 미얀마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
영화로도 제작된 '콰이강의 다리'는 일제 식민지 수탈의 잔혹성을 대변하는 현장이다. 수많은 미얀마 사람들과 영국군, 네덜란드 포로들이 동원되어 가혹한 노동 끝에 사망했다. 현지 가이드 말에 의하면 미얀마 사람들은 지금도 영국인보다 일본인에게 더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다.
미얀마 곳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미얀마 사람들은 식민의 역사를 결코 쉽게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얀마 독립의 영웅 아웅 산 장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거의 신격화 수준이다. 미얀마 곳곳에는 아웅 산 장군의 이름을 딴 지명이나 거리, 공원이 있으며 집집마다 아웅 산 장군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아직까지도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한 채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실과 비교되어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매국의 더러운 자양분을 먹고 자란 대부분 친일파 후손들은 자기반성도 없이 오히려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있는 현실을 생각하니 속이 터질 지경이다. 물론 미얀마도 들여다보면 식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구석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나라의 모습은 '누가 뭐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
최근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특별기구) 해체의 주범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무리들을 보면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과오는 반복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