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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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협상에 대해서 공화당 지도부는 중간 선거 결과에 드러난 민의를 거스르는 것이라고도 비판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먼저, 지난 중간 선거의 투표율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전략 변화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사회는 대선이 있는 해의 투표율이 50~60% 대이고 중간 선거기는 40%대 초반의 투표율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번 중간 선거에서는 36%대라는 전후 최저치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이런 저조한 투표율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실망한 민주당 표심의 이탈 때문이라는 해석이 정설이다. 선거 기간 내내 공화당이 '무능한 오바마 때리기'로 일관하며 표를 긁어모으자, 오바마로서는 새로운 전략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패배를 수용하기보다는 '전체 미국민'의 의사를 특별히 강조하며 전의를 불태운 것은 이런 전략의 시발점이었다. 민주당은 당내 좌파인 엘리자베스 워런을 정책소통위원회 전략보좌관(strategic policy adviser)으로 지도부에 입성시켜 당내 진보 진영의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인종, 환경 문제 등 민주당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대표할 수 있는 고유 아젠다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민법 강행, 중국과의 온실 가스 감축 협상 강행, 키스톤 XL 송유관 건설 법안에 대한 거부권 표명 등 진보적 정책 성향으로의 좌클릭을 감행했다. 쿠바와의 수교 협상에 대한 결단 역시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둘째는 레임덕 단계에 들어선 대통령이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에 이만한 사안도 없다는 현실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쿠바 협상은 성공한다면 닉슨의 핑퐁 외교나 클린턴의 베트남 수교만큼이나 큰 업적이다. 쿠바는 캐리비안 중미 최대 규모의 국가이자,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한 듯, 신년 연두연설에서 오바마가 "50년을 지속한 정책이 효과가 없을 때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볼 때"라며 "유효 기간이 한참 지난 정책을 끝내겠다"고 말하자, 의회에서는 큰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셋째, 미국 내 여론의 변화다. 이미 5년 전 여론 조사(<워싱턴 포스트>)에서 쿠바와의 수교를 찬성하는 수가 2/3를 넘어섰고 반대 여론은 27%에 불과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쿠바계 미국인(Cuban American)이 2013년 통계에서 2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카스트로 형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도 변했다.
과거 쿠바 이민자들이 격렬한 반카스트로 운동의 신봉자들이었다면, 최근 특히 1995년 이후에 들어 온 쿠바인들의 경우 개입주의 성향이 다수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수교를 공약으로 내걸어 두 번의 대선에서 중요 선거구인(swing state) 플로리다 주와 마이애미의 쿠바인 밀집 선거구 모두에서 전승하였다.
쿠바에 대한 제재를 강조해 온 1세대 이민자들이, 경제적 목적으로 도미한 후세대 난민들을 과잉대표하고 있다는 점을 오바마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수의 침묵을 왜곡대표하고 있는 공화당 성향 쿠바계 미국인들과 싸울수록, 대중적 지지도 확보에 더 유리하다는 정치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셈이다. 이는 우리 탈북자들의 미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중남미 지정학과 쿠바의 봄?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국내 정책 동기만으로 정책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럼 무엇이 오바마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미국의 앞마당인 바하마나 푸에르토리코보다 가까운 쿠바가 미국 경제권에 흡수될 가능성은 상존해왔다. 그런 쿠바 내에서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고 정권에 대한 불만도가 증대된다면 쿠바에 대한 개입 정책의 유혹과 매력은 분명하다.
2008년 쿠바 의회 선거 당시 쿠바인들의 13.4%가 무효 혹은 백지표를 던졌다. 2013년 선거에서는 무려 그 수가 2배인 24%로 급증했다. '아랍의 봄이 쿠바에도 일어날까'라는 논란이 공개적으로 전개된 것도 이 즈음이다. 못 먹을 과일은 쳐다보지도 않는 현실주의적인 외교관들에게 쿠바의 '시민 혁명'이라는 유혹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이 그 해 6월에 비밀협상을 시작한 것도 그냥 우연만은 아니다.
한편 중남미의 지정학과 지경학 변화도 간과하기 어려운 변수다. 남미에서 좌파 바람이 분 이후, 미국은 중남미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왔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의 앞마당이던 중남미에 중국 자본이 대규모로 들어오면서 미국은 경계심을 늦출 수 없게 되었다.
니카라과에 중국 자본이 들어가 파나마 운하의 100년 독점을 끝낼 새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그 한 예에 불과하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에만 두 차례 즉, 4월 멕시코 등 3개국 순방, 7월 쿠바,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4개국 순방 등 부지런히 남미를 다닌 것도 미국을 자극하였다. 며칠 전 바이든 부통령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브라질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것도, 쿠바 협상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기울어가는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지정학의 일부분이라 하겠다.
라울 카스트로의 셈법이번 협상은 단기적으로는 쿠바에게 이익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대 쿠바 송금의 합법적 규모 증대, 관광 수입 증대, 쿠바의 국제 기구 가입 논의 진전 그리고 쿠바 의인 5인(Cuban Five)의 석방 등 라울에게는 여러 가지의 정치경제적 셈법이 가능했다.
2010년 이후 쿠바의 연간 교역 적자 규모는 70~100억 달러 수준이다. 이 교역 수지의 적자 폭 중 1/3은 쿠바 이민자들의 송금으로, 또 다른 1/3은 관광 수입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쿠바 의사, 교사들의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등) 해외 진출에 따른 인력 서비스 수익으로 충당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협상을 통해 송금과 관광 수익이 결정적으로 늘어난다면 교역 수지 적자를 메우는 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쿠바 가구의 62%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 이민자들의 송금액은 이미 20억 달러 수준에서 35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번 협상으로 2015년에는 그 규모가 더욱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급속히 증대하고 있는 관광객 수 역시 폭발적으로 증대할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