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사각>겉표지
검은숲
좀 더 천재적인 사기꾼이라면, 희생자까지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희생자가 거액의 돈을 뜯기고도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할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완전 범죄가 되는 것이다. 완전 범죄는 살인같은 강력 범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다카기 아키미쓰의 1960년 작품 <대낮의 사각>에 바로 이런 범죄자가 등장한다. 작품의 제목에 나오는 '사각'은 바로 법률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의미한다. 환한 대낮에도 보지 못하는 사각 지대. 범죄자는 그 사각을 이용하고 법으로는 그를 처벌하지 못한다.
작품의 배경은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말까지의 전후 일본. 주인공은 도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쓰루오카'라는 젊은이다. 그는 일종의 사금융회사를 만들어서 전문적으로 금융 사기를 계획하고 실현에 옮긴다.
쓰루오카는 여러 차례 자신만의 방법으로 금융 사기를 실행하지만, 그때마다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다. 쓰루오카의 사기는 일종의 '어음 사기'라고 보면 된다. 수십년 전 우리나라에서 이철희, 장영자 부부가 일으켰던 그런 거액의 어음 사기와 비슷하다. 대신에 쓰루오카는 잡히지 않는다. 검찰도 쓰루오카를 주시하지만 구속할 명목이 없다. 요컨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것. 쓰루오카는 이런 완전 범죄를 언제까지 유지할까?
법의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금융 사기<대낮의 사각>에 나오는 등장 인물과 많은 사기수법은 당시에 일본에서 실존했다고 한다. 하긴 실존했던 범죄였으니 작품 속에서 그렇게 세밀하게 사기의 수단을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이런 범죄는 2차대전 이후 혼란스러운 일본의 사회 상황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흔히 금융 사기를 가리켜 '지능형 범죄'라고 한다. 작품을 읽다보면 '이런 범죄를 구상하려면 정말 보통 머리로는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작품 속의 범죄를 지금 현실에서 따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완전 범죄로 끝난 살인 사건을 다시 모방하기 힘든 것처럼.
작가는 작품의 도입부에서 이 이야기를 발표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방범이 생길까 우려한 것이다. 삶은 전쟁터다. 적군의 공격무기가 강해지면 그만큼 아군의 방어도구도 단단해진다.
이 작품을 읽고 모방범도 생길 수 있지만, 동시에 이런 수법에 대응하는 대비책도 생겨나는 법이다. 사기와 살인은 크게 다를게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대낮의 사각 1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검은숲,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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