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어제까지 누군가 있었던 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던 방과, 그리다 만 세계지도.
김동주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른 채 들어선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세계지도에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된 지난 7개월의 여행이 칠해져 있었다. 내가 기뻤던 일, 슬펐던 일이 고스란히 그려진 그 지도는 중앙 아메리카의 어딘가에서 멈추었다. 그때가 아마, 해를 막 넘기고 외로움에 지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던 즈음이다. 참았던 눈물이 그제야 쏟아져 나왔다. 당신은 외로웠을까. 그리다가 멈춰 서고, 다시 그리다가 멈춰 서는 당신. 뼛속까지 외로웠을까.
눈이 많이 오면 밖을 향해 그저 고개를 돌리면 되었고, 외로울 때면 그리운 이에게 쓸 엽서 한 장 집어 들면 되었지만, 더 이상 그녀가 오지 않는 건 도무지 황망한 노릇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수백의 도시를 휘젓고 다니던 나는 정작 집으로 돌아와서는 길을 잃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고(어차피 할 일도 없었다) 예전보다 눈물이 부쩍 많아졌다. 나의 귀국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지인들은 내가 지나쳐 온 그 무수한 모험담보다도 '그녀'의 소식을 더 궁금해 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단 한 마디의 말은 '잘 다녀왔어'였지만, 내가 들었던 대부분의 말은 '그럴 줄 알았다'였다. 그들은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세계일주를 떠났다 돌아온 사람이, 눈물 어린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말에 역으로 위안을 얻는 듯 보였다. 그렇게 지난 7개월간을 뒹굴고 사랑하고 울었던 세상과의 추억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더라도 그 순간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가 소중하지 않아서 떠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일주 후 죽음을 생각하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더니 같은 해 5월, 여행에서 돌아온 지 석 달째에 나는 전세 집에서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여행을 하던 도중에 벌어진 일이지만, 신탁경매사건에 휘말려 법정다툼까지 갔던 그 일은, 결국 변호사 선임료라는 빚만 남긴 채 패소로 막을 내렸다(관련기사 :
"이 집 전세계약 사기래" 7천만원 날리고 쫓겨났습니다).
전 재산까지 날리고 고향에 내려갔을 때, 부모님은 다 큰 아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 하셨다. 찜질방을 전전하던 그 즈음, 나는 한동안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하루 종일 잊어도 생각이 났고, 나는 내가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도,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도, 남의 물건을 훔쳐서 가지고 있는 좀도둑마냥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 그것은 누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답답함이 아니라 누가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 외롭고 목이 마른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사람들이 말하던 '무모한 여행' 때문인 것만 같았다.
정말로 심각하게 죽음을 생각했다.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로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슬아슬한 끝자락까지 가서 안을 들여다본 그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 궁색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당신은요? 하고 말이다.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일깨워 준 세계일주결국 <오마이뉴스>에 '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라는 이름으로 첫 회가 나갔을 때, 수없이 많은 비난과 악성 댓글이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뻤다. 누군가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내 지난날이 그렇게 바깥으로 튀어나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연락이 뜸했던 지인, 친구, 선후배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 중 한 친구의 집에 거처를 정했다. 기사에 등장한 장소를 여행했던 사람들, 그곳에 사는 현지인,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즈음 나의 특이한 이력을 눈 여겨 보았다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요컨대 나와 전 세계 스물네 개의 나라는 어떻게든 이어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