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골목에 자리한 부모가 없거나 가난한 집 아이들의 방과후 공부방.
송성영
"공부방을 찾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나 가정 형편이 아주 어려운 아이들이다.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10학년까지 있는데 1, 2, 3학년 4, 5, 6학년 7, 8, 9, 10학년 세 그룹으로 나눠서 공부하고 있다. 이곳 선생님들은 모두 5명, 이들은 영어를 비롯해 기타, 그림, 댄스, 컴퓨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공부방이 문을 열었을 때 갠지스 강가 가트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구걸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그날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다음 날 공부방을 다시 찾아가야 했다. 사진기를 들이대기도 전에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보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제는 취재에만 몰두 해 있어 아이들의 표정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 것이었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보자마자 취재를 한답시고 공책 몇 권 들고 가서 호들갑을 떨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바라나시 외곽지역의 움박촌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던 아이의 무언의 물음처럼 공부방 아이들의 눈빛이 똑같이 묻고 있는 듯했다.
'사진을 왜 자꾸만 찍어대는 거죠?'부모에게 사랑조차 제대로 못 받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맑은 눈빛들, 나는 인도 아이들의 그 크나큰 눈을 보고 있으면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는 것은 뻔뻔한 작업이다. 사진기를 들이댔다. 아이들이 사진 찍는 나를 쳐다본다. 내가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순수한 눈빛들이 내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을 기사거리의 대상으로 삼아 사진을 찍어대고 있는 내 검은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시꺼먼 마음으로 아이들의 공부를 방해 하고 있는 것 같아 몇 장의 사진을 정신없이 찍어대고 서둘러 공부방을 빠져나왔다.
공부방을 빠져 나오면서 산티드라씨의 형제들에게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인 '선재'를 떠올렸다. 저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중에 '선재'라는 이름이 또 있을 것이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바라나시에서 머물면서 선재라는 이름을 여기저기서 만났다. 갠지스 강을 유람하는 보트 이름도 '선재 보트'이고, 자신들의 배를 타자며 호객했던 아이 이름이며 그 작은 체구로 노를 저었던 아이 이름도 선재였다.
화엄경의 선재동자의 선재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선재라는 이름과 만나면서 선재동자를 떠올렸다. 그 크고 맑은 눈빛의 인도 아이들을 보면서 화엄경의 선재동자를 떠올렸다.
인도에서 만난 선재... 내 안의 탐욕을 내려놓다한문으로 선재(善財)의 재를 풀어보면 재물을 뜻한다. 화엄경에 보면 선재동자는 재물이 아주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그 이름을 선재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도 사람들이 '선재'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은 아마 재물이 많기를 바라는 것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엄경의 선재동자는 재물과 상관없는 깨달음의 길을 걷는 구도자를 상징한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 중 하나인 화엄경(華嚴經)의 본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인데, 그 뜻은 '크고 넓은 부처님의 세계를 여러 가지 꽃으로 장엄하게 만드는 경'으로 풀이된다. 고은 선생의 소설과 장선우 감독의 영화 속 '화엄경'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선재동자는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