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내려가면 죽는다, 이 산에서는

[어느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45]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 ⑦

등록 2014.12.12 20:58수정 2014.12.1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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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기자 말

 마낭에서 야크카르카 가는 길. 마낭의 고도는 3519m. '삼천오백십구 미터'라고 천천히 중얼거려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낭에서 야크카르카 가는 길. 마낭의 고도는 3519m. '삼천오백십구 미터'라고 천천히 중얼거려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 Dustin Burnett


하이 알티튜드 식크네스(High Altitude Sickness). 고산병. 낮은 지대에서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대로 올라갔을 때, 상대적으로 산소가 부족해져 이에 적응하지 못한 신체가 보내는 이상증세다.


지금 머물고 있는 마낭의 고도는 3519m. '삼천오백십구 미터'라고 천천히 중얼거려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을을 둘러싼 설산, 야크처럼 긴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들, 옷을 두툼이 입은 마을 사람들. 마을의 이런저런 풍경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나서야 높은 곳에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가루에서 잠시 두통이 있었던 것 외에, 아직 별다른 증세는 없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의 고비인 쏘롱 라의 고도는 5416m. 쏘롱 라를 넘기 전 고산병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마낭에서의 중요한 과제다.

커피숍, 영화관, PC방 등 다양한 시설이 있지만, 마낭에 머무는 동안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은 HRA(The Himalayan Rescue Association)다. HRA에서는 쏘롱 라를 넘기 위해 마낭에 모여든 트레커들을 위해 매일 고산병 관련 무료 강의를 진행한다.

웅장한 히말라야의 자연을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 이 산을 오른 트레커들의 의무이겠지만,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의무이고 과제다. 트레커들의 대부분은 저지대 도시 출신의 여행자들이기에 고산병은 생소한 개념이다. 때문에, 쏘롱 라를 넘는 트레커라면 HRA의 강의는 필수다.

 해발고도 3000m 이상부터는 고산병을 조심해야 한다. 웅장한 히말라야의 자연을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 이 산을 오른 트레커들의 의무이겠지만,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의무이고 과제이다.

해발고도 3000m 이상부터는 고산병을 조심해야 한다. 웅장한 히말라야의 자연을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 이 산을 오른 트레커들의 의무이겠지만, 안전하게 하산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의무이고 과제이다. ⓒ Dustin Burnett


고산병, 그 누구도 방심할 수 없다


마낭에 머문 지 사흘째. 어느 정도 몸을 풀었으니 우리도 의무를 다할 때다. 더스틴과 나도 강의에 참석했다. 강의는 HRA에서 매년 봉사활동을 한다는 젊은 커플이 진행했다. 매일 열리는 강의인데도 강의실은 트레커들로 꽉 차있다. 독일, 미국,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프랑스, 바레인 등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트레커들. 국적이 다양한 만큼, 성별, 체격, 나이도 다양하다.

고산병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이것. 누구라도 방심할 수 없다. 남자고, 체격이 크고, 건장하고, 평소 운동을 즐긴다고 해서 자만하고 방심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고산병은 나이, 성별, 체력, 건강 상태와는 상관없이 고산지대에서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가장 흔하게 오는 증상은 두통과 메스꺼움이다. 증상이 심해지면 약을 먹고 증상을 완화할 수도 있지만, 증상 완화보다 중요한 건 몸이 내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두통 등의 미약한 증세가 느껴진다 싶으면, 지금 있는 곳보다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쉬는 것이 좋다. 그보다 심한 구토나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구조를 요청하거나, 구조를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일단 낮은 곳으로 하산해야 한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 고산병 증세 때문에 하산할 때는 절대로 혼자여선 안 된다. 의식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혼자 산에서 내려가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산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다수는 혼자 하산을 하다 변을 당한 경우라고 한다.

일정에 대한 압박 또한 위험요소다. 히말라야를 찾는 대부분의 트레커는 일정 기간 정해진 휴가를 얻어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천천히 가면 정해진 시간까지 하산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쏘롱 라를 넘지 않고 올라온 길로 되돌아간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계산 때문에,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데도 무리를 해 쏘롱 라를 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나는 안 그럴 거야, 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눈앞에 닥친 위험 앞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 모르는 게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수업도 있는 것이고 비상훈련도 있는 것일 터. 고산병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반드시 숙지하고,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해야 할 행동들을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의 고비인 쏘롱 라의 고도는 5416m. 쏘롱 라를 넘기 전 고산병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마낭에서의 중요한 과제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의 고비인 쏘롱 라의 고도는 5416m. 쏘롱 라를 넘기 전 고산병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마낭에서의 중요한 과제다. ⓒ Dustin Burnett


 강가푸르나 호수. 하늘을 머금은 듯 푸르다.

강가푸르나 호수. 하늘을 머금은 듯 푸르다. ⓒ Dustin Burnett


80세 할아버지, 혼자 히말라야에 오르다

강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이반과 헬레나가 보인다. 다섯 명의 체코 트레커 그룹 중 한 커플. 다른 친구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표정이 어둡다.

"헬레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훔데에서 비행기 타고 포카라로 내려가기로 했어요. 방금  의사랑 얘기했는데 이 정도면 지금 내려가는 게 좋을 거래요."

훔데는 듀크레포카리에서 로워 피상으로 내려가는 구간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공항이 있어, 상공에서 설산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이나, 헬레나처럼 몸 상태 때문에 급하게 내려가야 하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이용하기 위해 찾는 마을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용기 있고 현명한 행동이다. 가끔은 포기가 미덕일 때가 있다.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안전을 위해 하산을 결정한 이반과 헬레나를 모두가 격려해 주었다. 우리도 고산병 증세가 심하거나 산세가 험하면, 미련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거야. 더스틴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중국인인가!"
"아뇨 한국인이에요."
"오! 내가 5년 전에 호주에서 만난 한국 여자랑 페이스북 친구라고!"

갑자기 길을 막고 내 앞에 선 할아버지. 나이가 꽤 들어 보인다. 어디를 여행하나 반드시 보이는 유럽 단체관광 어르신들. 마낭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있다고는 들었다만. 요새 어르신들은 단체관광으로 이런 험한 곳까지 오나.

"내가 54년도에 해군으로 한국 전쟁에 참여했어! 평양도라는 곳에 갔었지."
"저도다 먼저 한국에 계셨네요?"

50년 전이라면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 나도 모르는 옛날 옛적의 한국 이야기를 주절주절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알고 보니 노인 단체관광이 아니라, 혼자서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80세의 영국 할아버지다. 제대로 된 등산화도 아닌 런닝화를 신고, 가이드도 없이, 무겁다는 이유로 물 한 모금 짊어지지 않고 산길을 걷는, 이상한 할아버지다.

 마낭 마을. 몸을 꽁꽁 감싼 산장 뒤로 설산이 시리다.

마낭 마을. 몸을 꽁꽁 감싼 산장 뒤로 설산이 시리다. ⓒ Dustin Burnett


 마낭 옆을 흐르는 마르샹디 강

마낭 옆을 흐르는 마르샹디 강 ⓒ Dustin Burnett


"내가 무거운 공 던지기 선수거든. 작년에도 대표로 호주에서 열리는 경기에 참여했다고."

운동선수라는 할아버지는 경기 때문에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한 모양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의 고향에 가봤다며 길을 막고 외친다. 안 가본 곳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는 할아버지. 50년 가까이 명상을 해 왔는데, 요새는 인터넷으로 내세에 대해 공부한단다. 운동선수이면서 명상가인 할아버지는 골동품 수집가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는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들이 너무 많아!"

80세의 나이에도 건강하고 힘에 넘치는 할아버지. 이번 여행은 자식들이 특히나 뜯어말렸다. 건강한 20대 청년이 가이드를 동원해 오르는 것도 힘든 히말라야. 혼자. 가이드 없이. 물도 없이. 테니스화 신고. 젊음은 가진 게 없기에 용기 있다지만, 노년은 잃을 게 없기에 또 용기 있어질 수 있는 것일까. 대단한 할아버지다.

저녁에는 영화관에 갔다. 영화관! 트레커들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있는 마낭에는 심지어 영화관도 있다. 단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영화관이다. 100루피에 팝콘과 소다도 제공한다. 히말라야 영화관인 만큼 산악 관련 영화가 주를 이룬다. 우리가 본 영화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 1996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반한 미국 저널리스트가 쓴, 당시 눈사태로 같이 등반했던 팀원 대부분이 사망한 실제 사건을 다룬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우리가 오르는 쏘롱 라 코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8850m 고지의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산소가 절박한,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이 여기저기 도사리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기 위해, 무엇엔가 홀린 듯 열정을 쏟아넣다, 결국 목숨까지 잃는 사람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긴 하다만, 당장에 쏘롱 라의 고지를 넘어야 하는 우리가 보기에 적절한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심장이 오싹하다.

 마낭의 영화관. 트레커들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있는 마낭에는 심지어 영화관도 있다. 단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영화관이다. 100루피에 팝콘과 소다도 제공한다.

마낭의 영화관. 트레커들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있는 마낭에는 심지어 영화관도 있다. 단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영화관이다. 100루피에 팝콘과 소다도 제공한다. ⓒ Dustin Burnett


 일 주일을 머문 후에야 마낭을 떠났다. 일 주일이면 고도에 적응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고도 적응을 빌미로 게으르게 내팽개쳐 놓은 몸을 추슬러, 다시 산길을 올랐다.

일 주일을 머문 후에야 마낭을 떠났다. 일 주일이면 고도에 적응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고도 적응을 빌미로 게으르게 내팽개쳐 놓은 몸을 추슬러, 다시 산길을 올랐다. ⓒ Dustin Burnett


며칠째 날씨가 흐리다. 마낭에 있는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라는 틸리초와 경치가 아름답다는 아이스 레이크는 꼭 가보려고 했건만, 한동안 게으름을 피웠더니 그것도 시큰둥하다. 고산병 강의를 듣고 '희박한 공기 속으로' 같은 영화까지 보고 난 지금. 틸리초고 뭐고 다 필요 없다. 그저 쏘롱 라 고지나 무사히 넘길 수 있었으면.

일 주일을 머문 후에야 마낭을 떠났다. 일 주일이면 고도에 적응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고도 적응을 빌미로 게으르게 내팽개쳐 놓은 몸을 추슬러, 다시 산길을 올랐다. 날씨는 화창하고 길은 수월하다. 고도 때문인지, 고산병에 신경을 너무 쓴 탓인지 숨이 차다. 기분 탓이더라도 조심해야지. 몸이 하려는 말을 듣는 게 중요하다니까.

야크카르카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 한 시간 거리인 레타르까지가 오늘의 목표. 눈이 내린다. 눈을 피해 산장에 들어갔다. 이스라엘 트레커 아멧과 체코 트레커 토마스, 마케터, 미란이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를 맞는다. 안면식을 한 지 보름도 안 되는 사이지만 진심으로 반갑다.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쉬자.

 마낭 마을 옆에 자리한 강가푸르나 호수. 빙하가 녹아 생긴 호수이다.

마낭 마을 옆에 자리한 강가푸르나 호수. 빙하가 녹아 생긴 호수이다. ⓒ Dustin Burnett


따뜻한 산장, 뜨거운 밀크티가 있는 히말라야

창밖으로 내리는 눈은 점점 굵어졌다. 토마스, 마케터와 미란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흄데로 돌아간 이반과 헬레나의 친구들이다. 그들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안타까워하면서도, 잘한 결정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이반과 헬레나는 여유 있게 쉬도록 두고, 셋이서 쏘롱 라 바로 전 마을인 토롱 페디까지 올랐다고 한다. 토롱 페디에서는 미란의 상태가 문제였다.

기침이 그치지 않아 다시 이곳 야크카르카까지 내려와 숨을 고르고 있는 상황. 만만한 게 아니구나. 별생각 없이 여기까지 올라오긴 했는데. 이제 어쩌지. 쏘롱 라를 넘지 못하면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쏘롱 라라는 상자 안에 꼼짝없이 갇힌 기분이다. 쏘롱 라를 무사히 넘기고, 산행을 같이 한 친구들과 신나게 축배를 올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쏘롱 라. 잘해낼 수 있을까.

아멧 그리고 체코 친구들과 함께 저녁 내내 카드게임을 했다. 아늑함이란 이런 거다. 눈 오는 산속,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찬 산장 안. 뜨거운 밀크티를 호호 불어 마시며 산에서 만난 친구들과 도란도란 지새우는 저녁 시간. 이런 아늑함도 눈이 오니까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시원함이란 더운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인 것처럼, 따뜻함은 차가움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니까. 따뜻한 공기에 쏘롱 라에 대한 걱정도 잠시 누그러들었다.

ⓒ Dustin Burnett


 야크카르카 가는 길.

야크카르카 가는 길. ⓒ Dustin Burnett


저녁 준비를 하던 산장 주인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오늘 토롱 페디를 오르던 트레커 한 명이 고산병으로 죽었데요."

저런. 가슴이 철렁하다. 

"한국 사람이었다네."

산장 주인은 한국 사람이었다는 말을 하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다시 한 번 철렁 내려앉는다.

"토롱 페디로 내려가던 포터가 발견했다나 봐요. 다른 트레커들 말을 들어보니 그날 토롱 페디에서 출발한 트레커라고 하던데. 혼자 올라갔는데 증상이 너무 심해 하산하는 길에 변을 당한 모양이에요."

목숨을 걸고 산을 오를 생각은 아니었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할 수 있구나. 증세가 심해지면 하산하면 된다고 단순히 생각했다. 하산한다고 다가 아니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고도로 내려와 쉬어야 하고.

아픈 몸으로 혼자 내려오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늘이 무너질 소식을 들을 가족들은 얼마나 아프고 슬플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안나푸르나라는 눈부신 산을, 내가 그러했듯 설레어 하며 올랐을 트레커. 명복을 빈다.

 야크카르카 가는 길. 마낭에서 쏘롱 라까지는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야크카르카 가는 길. 마낭에서 쏘롱 라까지는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 Dustin Burnett


 산과 산을 잇는 현수교. 안나푸르나를 오르며 수도 없이 건너야 하지만 건널 때마다 뚝 끊어질까 두렵다.

산과 산을 잇는 현수교. 안나푸르나를 오르며 수도 없이 건너야 하지만 건널 때마다 뚝 끊어질까 두렵다. ⓒ Dustin Burnett


"피상 마을에서 헝가리인들을 만났어. 안나푸르나 3봉으로 가는 전문 산악인들이었는데. 그날 하루 카드 게임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거든. 근데 얼마 전에 들은 소식이, 안나푸르나 3봉을 오르다 눈사태로 변을 당했대. 며칠 전까지 우리랑 같이 즐겁게 저녁 시간을 보내던 게 눈에 선한데…."

토마스의 말에, 유쾌한 헝가리 트레커들의 인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와 다를 것 없었을 그들. 하루의 고된 산행을 마치고, 산장에 모여든 동료 트레커들과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을 그들. 헝가리 카드 게임을 가르쳐주며, 이기든 지든 뭐가 그렇게 좋다고 함께 웃었을 그들. 왁자지껄하던 우리도, 산속에서 명을 달리한 한국인과 헝가리인의 소식을 듣고 잠시 숙연해졌다.

쏘롱 라를 넘기까지 18km. 토마스, 마케터, 미란과 함께 하기로 했다. 어려운 고지를 같이 넘길 친구들이 생기니 좋다. 의지가 된다. 나 혼자였으면 엄두도 못 냈을 도전. 더스틴과 함께, 그리고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과 함께 히말라야의 춥고 어두운 저녁 시간을 보내며, 가끔 스쳐 지나가면 서로의 안위를 물으며, 지금까지 잘 해왔던 것 같다. 쏘롱 라까지, 그리고 쏘롱 라를 넘어서 포카라까지. 모두 무사히 잘해나갈 수 있길.

 야크카르카 가는 길. 차갑고 가난한 공기가, 높이 왔다고 속삭인다.

야크카르카 가는 길. 차갑고 가난한 공기가, 높이 왔다고 속삭인다. ⓒ Dustin Burnett


 강가푸르나 호수 파노라마

강가푸르나 호수 파노라마 ⓒ Dustin Burnett


#히말라야 #고산병 #안나푸르나 #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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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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