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 헤드(Slea Head) 도로를 달리다보면 선사시대의 유적지와 양을 치는 목자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김현지
대다수 아이리시(아일랜드인)들은 아일랜드의 풍경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말이다. 아일랜드는 주변의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과거의 찬란한 유산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유명한 건축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람보다 양과 소, 말이 더 많은 나라인 만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각종 동물들의 모습이다.
어느 지역에는 양 목장이 있고, 어느 지역에는 젖소 목장이 있는 식이 아니라 한 목초지에 양, 소, 말들이 함께 뛰어 논다. 처음 이 풍경을 봤을 땐 사방에서 동물들이 뛰어 노는 것이 신기해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렀지만, 어느새 나 역시 이러한 풍경에 적응해 버렸다.
그래서 아일랜드의 풍경들은 어떤 면에서는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리시들이 추천했던 곳이 케리 지역이었다. '이곳의 풍경은 꼭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믿고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집에서 출발해 딩글로 가는 아일랜드의 풍경 역시 동네에서 자주 보던 것과 비슷했다. 그렇게 4시간 가량을 달렸을까? 케리 지역을 지나 딩글 반도로 들어가자 신기하게도 항상 보던 풍경들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 대신 운전을 하던 나는 딩글을 향해 들어가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심상치 않은 풍경들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자기! 저기! 저기!! 옆 좀 봐봐! 빨리 사진 좀 찍어줘요!"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놀란 남편은 부랴부랴 일어나 사진기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아... 아까 거기 찍었어야 했는데..." 우리가 언제 이렇게 높은 지대까지 올라왔던 것일까? 운전을 하는 내내 특별한 경사를 느끼지 못했는데... 창문 밖에는 흐린 날씨가 무색할 만큼 푸르고 넓은 평야지대 아래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하늘이 떡하니 자리 잡고 우리를 반겼다. 어디가 바다의 끝이고 어디서부터 하늘이 시작되는지 모를 만큼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불분명했지만, 하얀 도화지에 그려진 한 폭의 풍경처럼 그곳은 아름다웠고 평온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케리 지역을 아름답다고 하는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딩글을 찾는구나...'
아직 딩글 반도의 본격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첫 풍경만으로도 나는 작은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았다. 사진에서만 봤던 드넓은 대지의 아름다움을 바로 옆에서 보았고 그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벅찬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대서양의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는 곳, 슬리 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