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하카의 수제 소세지 - 쵸리소(Chorizo)라도 불리는 멕시코의 돼지고기 소세지는 매콤한 맛이 더해져 우리 입맛에 잘 맞다.
김동주
본격적인 식탐은 거리의 이름을 그대로 딴 와하카의 전통시장, 11월 20일 시장(Mercado 20 De Noviembre)에서 벌어진다. 시장 외곽의 거리에서는 소시지를 주렁주렁 널어놓고 판다. 한 켠에서는 늘어난 고기 집이 매캐한 냄새를 피워대며 고기 굽기에 한창이다. 쵸리소(Chorizo)라고 불리는 멕시코의 소시지는 짜서 도저히 생으로는 먹을 수 없는 유럽의 소시지와 달리, 적당히 매운 맛이 가미되어 내 입맛에는 그만이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둘러봐야 될지 몰라 길 잃은 사람처럼 우왕좌왕하던 차에 말로만 듣던 메뚜기 볶음과 마주쳤다. 여러 개의 바구니에 나누어진 메뚜기가 뭐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혀를 내밀고 손을 휘저어댔다.
아무래도 매운 맛을 뜻하는 듯했다. 콧수염을 잔뜩 기른 남자가 와서 한 봉지 가득 메뚜기를 담아갈 때까지도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고, 최종 미션은 나중에 치르자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 시계방향으로 메뚜기 볶음, 옥수수 잎으로 쩌낸 타말레, 멕시코 고유의 소스인 몰레와 몰레소스를 얹은 돼지고기 요리.
김동주
얼핏 보면 깻잎에 무언가를 싸놓은 것 같은 타말레(Tamale)는 우리네 만두처럼 푹신푹신한 질감이 일품이다. 한참 입시름 끝에 알아낸 녹색 잎의 정체는 옥수수잎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한 옥수수의 맛과 속에 든 고기의 맛이 어우러져 달달한 만두같은 맛이 난다.
멕시코 최고의 소스라는 '몰레(Mole)'는 또 어떠한가. 우리네 김치처럼, 멕시코 31개 주에서 저마다 다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 낸단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개의 몰레 중 하나를 고르고 야채와 고기를 골랐다. 바로 옆에 놓인 긴 식탁에 앉아서 주문한 것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은 야채를 잘게 썬 국물에 몰레를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적당히 걸쭉한 몰레가 부어진 돼지고기를 허겁지겁 입에 넣어보니 듣던 대로 초콜릿의 단맛과 살짝 매운맛이 곁들여졌다. 그런 내가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없이 엄지 손가락을 세웠더니 그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먹는 것뿐이었지만 왁자지껄한 시장의 분위기가 좋아 덩달아 즐겁다. 끝내 메뚜기 볶음은 시도하지 못했지만 유럽의 예술혼을 가졌다는 와하카의 진짜 예술은 바로 이 음식일지도 모른다.
점점 더 밝아지는 와하카의 밤
▲흑백이 어울리는 도시 -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와하카는 7개월간 여행을 하면서 흑백사진을 찍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장소였다.
김동주
야생조류의 울음소리가 고요하게 도심의 숲길을 지나 위로 올라간다. 시내로 들어서기 전의 와하카의 밤은 한적하고 고요했지만 차츰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도착한 소깔로 광장은 향긋한 냄새로 걸음을 멈추게 하던 상인들이 없어졌을 뿐, 여전히 흥겹다.
영롱한 빛을 깜빡이는 가로등은 거리의 화려한 색깔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옷을 갈아 입힌다. 소깔로 광장에서 이어진 어느 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문득 내가 오래된 흑백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흑백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그렇게 색을 잃어버린 거리에서 차분한 밤이 깊어간다.
▲와하카의 화려한 야경 - 소칼로 광장의 정원(위), 규모로는 가장큰 와하카 대성당(왼쪽 아래), 알칼라 극장의 눈부신 야경(오른쪽 아래)
김동주
아담한 등롱이 빌딩숲 대신 광장 가득 정원을 비추고, 풀벌레들의 낮은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그곳에다 창을 내고 싶었다. 작은 액자가 올려진, 화려하지 않은 탁자를 놓고 오른쪽으로는 요정의 정원 같은 숲이, 왼쪽으로는 여전히 햇살이 쏟아지는 듯한 착각이 드는 커다란 성당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곳에서 아침을 맞는다면, 새벽에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에게도 안녕을 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쩐지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이 그립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그 답장이 오리라는 것을. 무엇이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턱밑까지 눈꺼풀이 내려왔을 때처럼 머리 속에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참 뒤에 정신이 들고 내가 발견한 것은 그녀의 이름만이 반복해서 쓰여진 엽서 한 장이었다. 그 아름다웠던 와하카의 밤, 내 손가락 마디마디로 비가 내렸다.
간략여행정보 |
멕시코를 방문한 당신이 꼭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수도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달린 뒤 도착한 와하카에서 먹고, 먹고, 또 먹는 일이다. 멕시코 남서부의 고원도시인 와하카는 원주민의 전통과 문화가 진하게 남아있으며 무엇보다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도시를 둘러싼 산맥으로 오랜 시간 고립된 이곳에서 전통음식이 발달한 것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먹거리는 와하카 전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도시의 중심인 소칼로 광장에서 십자로 흩어져 있는 거리가 중심이다. 촘촘하게 들어선 거리음식점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종일 같은 거리를 멤돌며 양손 가득 타코를 집어 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음식의 재료를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메뚜기와 애벌레는 물론이고 전갈까지, 와하카에서 먹지 못하는 것이란 없다.
좀 더 자세한 와하카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67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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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먹고, 또 먹고... 이 도시는 그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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