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평소 모습2010년 칭다오 요트경기장에서 찍은 07학번 학생들
김소연
"내일 체육대회가 있습니다. 7시까지 운동장으로 나오세요."
항상 그런 식이었다. 항상 그런 식으로, 학교에서는 그 날짜에 닥쳐서야 공지사항을 알려줬다. 오전 7시에, 더구나 대학교에서 전교 운동회라니! 8시 강의도 버거웠던 첫해, 나는 저절로 "헉" 소리가 나왔다.
다음 날 오전 6시 50분, 택시에서 허겁지겁 내렸다. 내 몸은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 같았다. 운동장에서 강철처럼 단단한 남자 목소리가 마이크로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흐물흐물 대던 정신이 깨어났다. 어제 국제교류처 직원이 7시까지 운동장으로 나오라던 말 뒷부분이 번개처럼 생각났다.
"체육대회에서 무슨 종목에 참가하실 거죠? 달리기, 허들, 멀리뛰기, 투포환... 웬만한 육상종목은 다 하니까 마음껏 고르세요." 이 시간에 땅속으로 푹푹 꺼질 것 같은 이 몸으로 도대체 무엇을 고를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헉"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운동장 안은 전국체전 개막식이라도 열릴 분위기였다. 운동장 저편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오성홍기, 관중석를 가득 메운 사람들, 한가운데 학교 공산당 당서기, 총장, 부총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쭉 앉아 있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행진곡과 쩌렁쩌렁한 사회자의 목소리 때문에 아침 7시가 아니라 마치 대낮 같았다.
드디어 체육대회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오성홍기를 향해 중국 국가를 불렀다.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학교 간부들이 차례로 일어나 인사했다. 개막 선언과 동시에 관중석에서 천둥 같은 고함 소리가 쏟아졌다. 이어서 학원별로 교수들이 나와 운동장 트랙을 돌며 행진했다. 해당 학원 지정석에서 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열렬히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사회자가 국제학원을 소개했다. 한국인 교수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트랙으로 나갔다. 그 때 국제학원 학생뿐만 아니라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와-"하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손님 대접을 하려는 것일까. 어쨌거나 그 소리 덕에 어색하고 불편했던 기분이 싹 가셨다. 우리는 주춤거리던 발걸음을 쭉쭉 펴고 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박수 소리는 우리가 트랙을 다 돌 때까지 이어졌다. 마치 올림픽 대회에 나온 국가대표 선수라도 된 듯했다.
대중의 환호는 마취제 같았다. '항상 이런 식'이라던 불만도, '새벽부터 무슨 체육대회람' 하던 짜증도 날아가 버렸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평소 빡빡하게 규칙을 강조하던 국제교류처 직원도 한결 나긋나긋해졌다.
"이른 아침부터 수고했습니다. 중국과 한국 대학이 좀 다르죠? 오늘은 처음이니 그냥 편하게 구경하다가 적당한 때에 돌아가서 쉬세요."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누구나 예외 없이 경기에 참가해야 한다고 우기던 사람이 어느새 이방인을 배려하고 있었다. 운동장 트랙을 함께 돌고 나니 '어쨌거나 우리는 하나'라도 된 것일까. 이것도 일종의 신고식인가 싶다. 이제 우리도 그들의 원안에 들어간 것일까.
마취제의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개막식이 끝나고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탱탱하던 분위기가 흐느적흐느적 풀어졌다. 운동장은 질서정연한 전국체전에서 어수선한 입시 체력장으로 바뀐 듯했다. 관중석 대열은 흐트러졌고 운동장 곳곳에는 이 종목 저 종목이 산만하게 벌어졌다.
개막식이 끝나자마자 슬쩍 운동장을 나갔다가 자기 순서쯤에 나타나는 교직원들도 있었다. 놀랍게도 국제학원의 20, 30대 중국 여선생들은 모두 투포환을 했다. 투포환은 하나같이 바로 그들의 코앞에 떨어졌다. 나는 "잘 하지도 못하면서 왜 하필 투포환을 선택했냐"고 물어봤다.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던지면 바로 끝나잖아요. 땀 흘릴 필요도 없고요." 매년 한 차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는 체육대회.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한, 눈도장을 찍는 군중대회 같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신입생 군사훈련,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