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산둥성 교육 두다오(督?) 학회 이사회2009년 7월 2일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에서 열린 산둥성 교육 두다오(督?) 학회 이사회.
산둥성 교육청 홈페이지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그러나 설계수업은 일 주일 동안 할 수업을 하루에 몰아서 하기 때문에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수업을 하셔야 합니다. 직원들이 퇴근을 하더라도 수업 시간을 꼭 지켜 주십시오. 수업 시간은 50분, 쉬는 시간은 10분입니다. 쉬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하면 안 됩니다. 간혹 불시에 누군가가 여러분의 수업을 참관하러 다닐 겁니다. 그 때 여러분이 교실에 없으면 곧 바로 상부에 보고되고 여러분은 시말서를 써야 합니다."
학교에서 처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학교가 이래? 대학교 수업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다니, 교수의 재량은 있기나 한 걸까? 목에 개 줄이 걸리고 발목에 쇠고랑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구나, 당혹감과 거부감이 일었다. 교권침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인 교직원은 그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에 왔으면 중국법을 따르면 그만이지, 별일은커녕 당연한 일을 가지고 유난을 떨어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외국인인 우리들은 우리대로 학교 측에 설명을 했다. 설계수업은 다른 과목과 달리 발표와 토론 위주로 한다, 그러니 시간에 딱딱 맞춰 50분 강의하고 10분 휴식하는 것은 무리다, 질보다 양을 따지는 수업평가 방식도 문제다, 게다가 수업 도중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불쑥 들어오면 어떻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씨알도 안 먹혔다. 학교 측은 발표든 토론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되 50분마다 끊어서 하고, 수업 평가도 외부인의 출입을 의식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될 걸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말은 쉬운데 실제로 설계수업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하는 수업만 해도 어수선하고 복작복작하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과제물을 벽에 쭉 붙인다. 한 명씩 발표를 하고 다른 학생들이 질문을 한다. 발표 내용 중에 공통된 문제점이나 이슈가 있으면 토론을 한다. 그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설계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대지에 같은 규모, 같은 기능의 건물을 설계하더라도 학생마다 개념과 과정, 결과물까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발표와 토론은 그 다름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왜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 그렇게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어떻게 공통된 문제를 다양하게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 고민의 내용이 그 날의 과제가 되고 다음 수업 시간에 발표할 내용이 된다.
이런 식의 수업은 학생들의 수준과 과제물 내용에 따라 발표와 토론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맥없이 끝나기도 한다. '50분 수업-10분 휴식'의 규칙을 지키기 위하여, 어쩌다 맹렬하게 불붙기 시작한 토론을 중간에 끊어 버릴 수는 없다. 끓어오른 분위기가 쉬는 시간 10분 만에 식어 버리면 또 예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두 시간 정도 폭풍처럼 몰아서 하다가 20분 정도 쉰다. 발표와 토론 과정이 끝나면 나는 학생들과 1: 1 수업을 하면서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건드린다. 이때 다른 학생들은 자기 자리에서 앞서 토론한 내용을 참고로 개인 작업을 하고 쉬는 시간은 알아서 한다.
기말이 다가오면 수업과 쉬는 시간은 더 애매모호해진다. 그때쯤 학생들은 디자인 단계가 끝나고 전시용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든다. 이때부터 시간 싸움이고 체력전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마감 스케줄에 맞춰 작업을 하는 동안 교수는 설계실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 연구실과 설계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학생들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독려하면 된다. 교수 혼자만의 욕심에 취해 학생 옆에 착 달라붙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면 오히려 마감을 제때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교직원이 말한, '그 누군가'가 수업시간에 나타난다면? 나는 꼼짝없이 시말서를 쓰다가 결국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다.
'그 누군가'를 사람들은 '두다오(督导)'라고 불렀다. '두다오'는 주로 교육, 제조업, 서비스업 분야에서 직원들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칭다오 이공대의 '교육 두다오'는 퇴직한 교수들이 주로 한다. '두다오'는 매학기 예고 없이 수업시간에 들어와서 수업을 참관한다. 1시간 동안 강의실 한쪽에 앉아서 해당 교수의 강의 내용과 방식을 기록하고 자신들의 평가를 보태어 '참관기록(听课记录)'을 쓴다.
만일 '두다오'가 왔을 때 강의실에 교수가 없거나 지각을 했다면 교무처에 통보가 되고 교수는 시말서를 써야 한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면 해직까지 된다. 또 만일 교수가 제 시간에 왔지만 결석자가 많아도 교수 책임으로 돌린다. 결석하는 학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교수의 수업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수업을 감독하는 사람은 '두다오'뿐만이 아니다. 교무처 직원들도 한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연휴 직전에 있는 보충 수업시간에 교무처 직원들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제대로 수업을 시작하고 마치는지 조사하고 학생들의 출석 상황을 파악한다. 교무처 직원들은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참관기록을 쓰지는 않는다.
학생들도 교수 평가를 한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려면 먼저 해당 과목 교수와 수업 내용을 평가해야만 한다. 이렇게 교수 평가는 학생, 교무처 직원, '두다오'가 삼중으로 한다. 초반에 나는 '두다오'나 교무처 직원이 돌아다니는 날이면 마치 움직이는 취조실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때로는 독 안에 든 쥐마냥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속으로 그들을 감독자나 지도자가 아닌 '감시자'라고 불렀다.
두다오에 맞선 '조력자'들, 공범자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