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당원인 학생은 입당 맹세와 당원의 사명을 되새기고, 새 당원은 훌륭한 당원이 될 것을 선서한다.
칭다오 이공대 홈페이지
그 때를 Y의 누런 갱지가 떠올렸다. 이제 나는 중공이 아닌 중국에 있고, 나의 중국 학생은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중국에서 공산당원이 되려고 안달이었다. 왠지 한 발에는 하이힐을, 다른 한 발에는 고무신을 신고 절뚝거리는 느낌이었다.
내 눈 앞에서 갓 스무 살을 넘긴 싱싱한 중국 청춘들은 환한 대낮에 교실에서 밝고 가볍게 공산당을 이야기했다. 쾌쾌한 냄새가 나는 동아리방, 자욱한 담배 연기, 결의에 찬 목소리, 고뇌하는 청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다른 반장들도 입당 절차를 밟거나 이미 당원이었다.
그동안 장난을 치며 허물없이 지냈던 교직원들도, 한국의 어느 서민과 다를 바 없이 자식 교육문제와 재테크에 열을 올리던 교수들도 당원이었다. 내 머릿속의 공산당원은 그렇게 소박하고 일상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공산당원은 어떤 의미일까?
알다시피 중국은 공산당이 독재하는 국가다. 정부기관이든 행정부서든 기업이든 학교든 공산당 조직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그 힘은 어느 조직에서나 막강하다. 대학교에서는 총장보다 대학교 당서기의 서열이 더 높다. 시(市)정부에서는 시장보다 시의 당서기가, 성(省)에서는 성장(省长)보다 성의 당서기가 더 높다. 관시(关系, 연줄, 인맥)사회인 중국에서 당과 인맥이 없으면 성공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과거 타도의 대상이었던 자본가들도 입당을 한다. 노동자와 농민의 당인 중국 공산당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민중의 당이 엘리트주의 당으로 변했다"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 문화대혁명이 저물 때까지 중국 공산당은 지주와 자산가, 우파 지식인을 반동분자, 반혁명분자로 몰아서 탄압과 숙청을 했다. 자본가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달라진 것은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때문이었다.
"부자 됩시다"를 외치던 덩샤오핑 시대에 자본가는 더 이상 반동이 아니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가진 고학력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개혁개방이 낳은 새로운 계급이었고 장차 중국을 선도할 주력군이었다. 공산당은 적극적으로 그들을 끌어안아야할 필요성이 생겼다.
2001년, 덩샤오핑의 후계자 장쩌민은 '3개 대표'를 제안하고 3개 계급의 대표들이 공산당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개 계급이란 전통적인 계급인 노동자와 농민, 선진문화를 대표하는 지식인, 선진 생산력을 대표하는 자본가를 말한다. 그렇게 공산당은 새롭게 뜨는 계급을 포섭할 수 있고, 자본가는 사업에 유리한 공산당 인맥이 생겼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된 셈이다.
그 결과 공산당원 수가 급증했고 계급 구성비는 역전되었다. 장쩌민의 '3개 대표' 이전에 6천 5백만 명도 안 되던 당원이 2010년 8천만 명으로 늘어났다. 1949년에 입당한 대졸자는 0.3 퍼센트에 불과했지만 2010년엔 전체 당원의 3분의 1이 넘었다. 민간 기업 대표의 3분의 1도 당원이었다.
반대로 당원 중 노동자와 농민의 비율은 40%로 떨어졌다. 이를 두고 프랑스 언론인 카롤린 퓌엘은 이렇게 꼬집는다. "민중을 위한 민중의 당"이 "엘리트주의 당"으로 변했다고(카롤린 퓌엘 지음, 이세진 옮김, <중국을 읽다 1980-2010>, 푸른숲, 2012, 326~327쪽).
당원 선발 과정 험난...'공산당원은 아무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