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이공대 여학생 기숙사기숙사 창문에 걸린 옷가지들
김소연
2인 1실이 6인 1실보다 '재미 없어서' 싫다는 아이들2학년 수업시간에 '최소한의 공간 설계'를 할 때였다. 학기 초, 워밍업삼아 기숙사 방을 설계해 보기로 했다. 먼저 현재 살고 있는 기숙사 평면을 그린 후 그 공간을 분석하고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하라고 과제를 냈다. 학생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저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설마 프라이버시 문제로 생각하고 기분 나빠하는 건가? 그 생각을 했을 때, 반장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기숙사에 아무 것도 없는데, 뭘 해야 할지...""아무것도 없다니, 그럼 어떻게 생활해?"내가 묻자, 학생들은 돌아가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음, 그냥 방만 있어요. 방에는 이층 침대가 3개 있고요. 방 하나에 여섯 명이 지내거든요." "세수하고 빨래하는 곳은 1층에 있어요. 그런데 더운 물이 안 나와요." "샤워는 학교 공중목욕탕에서 해요. 거기도 더운 물은 아침과 저녁에 두 시간씩, 딱 두 번만 나와요." "날씨가 춥거나 머리를 감을 때는 식당 근처 급탕실에 가서 뜨거운 물을 사 와요. 보온병 두 통이면 돼요."아, 이제야 알겠다. 목욕통과 보온병의 정체를...
"밥은 학교 식당에서, 공부는 도서관이나 설계실에서 해요." "빨래는 창문 밖에 널어요. 방 안이 비좁거든요. 이불은 공터에 널면 금방 보송보송해져요." 그 말에 나는 픽 웃음이 나왔다. 여학생 기숙사는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교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비오는 날이 아니면 언제나 알록달록한 속옷이 보란 듯이 창문에서 휘날린다. 그걸 보고 민망해하는 사람은 외국인뿐이다. 아무래도 이곳 사람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나 보다.
"겉옷이나 두꺼운 옷은 그냥 세탁소에 맡겨요. 돈이 아깝긴 하지만, 빨래하기도 힘들고 시간도 없어서....""새로 지은 기숙사는 나아요. 안에 식당도 있고, 공간도 좀 더 넓고.....""에이, 거긴 학교 밖에 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난방이 안 되잖아.""난방이 무슨 필요가 있어. 여섯 명이 있으면 체온 때문에 춥지도 않은 걸.""아주 추운 날에는 기숙사 방에 있는 냉난방기를 틀면 돼요.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겨울에는 히터로 사용할 수 있어요." "대신 오래 틀면 안 돼요. 방안이 너무 건조해져서 감기에 걸리기 쉬워요.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결국 여섯 명이 다 걸리고 말아요."듣다 보니 그들의 기숙사가 내 머리 속에 빤히 그려졌다.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생활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지고 보면 기숙사에 있을 것은 얼추 다 있었다. 철제 이층침대와 책상, 화장실, 세탁실... 문제는 공간의 배치였다. 그래서 기숙사 안에서 벌어질 광경이 밖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보온병과 목욕통을 들고 교정을 돌아다니는 학생처럼...
학생들이 기숙사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로 아무 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 있을만한 곳에 없어서 불편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기숙사는 뭐 하는 공간이지?""잠자는 공간이요."내가 묻자 학생들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잠만 자는 공간과 잠도 자는 공간은 의미가 다르다. 그러고 보니 4층짜리 학생식당 건물도 1층부터 4층까지 식당만 있다. 국제학원 건물 안에도 교실, 사무실, 화장실만 있다. 매점이나 복사집도 없고 휴게실이나 잠시 쉴 수 있는 개방된 공간도 없다. 다른 건물들도 대개 하나의 기능에 충실할 뿐이다. 이런 건물의 내부는 모든 층이 같은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면도 1장만 그리면 설계는 끝난다. 그만큼 건물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행위는 획일적이고 공간의 성격은 심심해진다. 대신 아주 '경제적'이다.
20여 년 전 내가 살았던 대학교 기숙사를 생각했다. 여학생 전용 기숙사였는데, 지금처럼 고층형이 아니라 지면에 넓게 퍼진 제법 규모가 큰 양옥집 형태였고 마당도 있었다. 나는 중국 학생들에게 그 기숙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기숙사 1층에는 출입구 왼편에 사무실이 있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오른편에는 작은 도서실이 있었다. 그 사이 안쪽에 식당이 있었는데 다목적이었다. 배식구 쪽에 식탁이 있고 정원이 보이는 창가에는 텔레비전과 소파가 있었다. 우리는 식당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드라마도 보았다. 학교 축제 기간에 여학생 기숙사가 개방되는 날이면 식당은 청춘남녀들이 모인 파티장소가 되었다. 기숙사 방은 2층과 3층에 있었고, 층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4층에는 자동세탁기가 있는 세탁실이 있고 그 옆으로 빨래를 널 수 있는 옥상이 연결되어 있었다.
건물을 단면으로 보면 층별로 먹고 자고 공부하고 쉬는 기능으로 구분된 생활공간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중국 학생들은 기숙사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하며 탄성을 질렀다.
나는 내친 김에 그 기숙사는 2인 1실이었다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가 바로 룸메이트이다. 코드가 안 맞거나 생활 습관이 정반대이면, 일상의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지고 감정의 골이 생기기 쉽다. 한 명은 불면증이 있는데 한 명은 코를 골거나 이를 간다면? 한 명은 온갖 깔끔을 떠는데 다른 한 명은 청소의 개념조차 모른다면?
우리의 이성은 생리적인 욕구나 나만 손해를 보는 상황 앞에서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 중국학생들이 6인 1실이라고 말했을 때 바로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그 좁은 방, 아래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침대에서 잠이나 잘 수 있을까? 냄새는? 청소는?' 당연히 학생들은 더 큰 소리로 감탄을 하리라.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두 명? 에이, 재미없겠네요."재미없다니? 타인과 살면서 일어나는 세밀한 감정사를 싹둑 잘라 버리고, 그저 두 명은 여섯 명보다 적으니 재미없단다. 왜 그럴까? 단체생활에 길들여져서 그런가? 이유가 궁금했다.
"기숙사에 두 명만 있으면 집처럼 심심하잖아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저만 보고 있어요. 집은 불편하고 심심한 곳이에요."그러고 보니 학생들은 모두 '한 자녀 낳기' 정책 이후에 태어난 외동이었다. 가족의 관심을 독차지하며 소황제로 자라난 아이들은 풍요를 누렸지만 외로웠나 보다. 어른들만 있는 집을 벗어나 기숙사에서 또래와 생활하는 즐거움이 일상의 불편함을 넘어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