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오티에의 초기 단계였던 허시에 호정치적 모토인 허시에를 따라 이름 붙인 고속철도
조창완
나 역시 중국 기차가 참 더럽다고 느낀 1998년의 취재 여행을 마치고, 1년 후 중국에 살게 됐다. 기차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던 중 2000년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 중국 기차는 뭔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쓰레기 투기나 흡연을 방관하던 열차 승무원들이 기차를 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손님이 버린 쓰레기를 끝없이 치우기 시작했고, 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1년쯤이 지나자 고급 침대칸 사람들은 쓰레기 투기를 멈추기 시작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해가 지나자 일반 침대칸 사람들도 쓰레기 투기를 멈췄다. 그리고 다시 일 년여가 지나자 일반 칸에서도 쓰레기 투기가 없어졌다. 2006년 즈음에는 기차에서 쓰레기 투기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일이 년이 지나자 중국인이 기차에서 가장 즐기는,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습관조차 줄어든 것 같았다. 해바라기씨는 시간을 보내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라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쓰레기 처치가 곤란하자 수십 년 동안 해오던 습관도 버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
중국에서 어떤 질서를 바로잡는 가장 좋은 방식은 벌금을 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차는 이런 징벌을 활용하지 않고도 승무원들의 솔선수범으로 좋은 시민문화를 만들었다.
비행기 속도 능가할 날 멀지 않아... 중국은 이미 철도 '맹주'기차 속도도 중국의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다. 1999년 톈진에서 유학 중이던 나는 그 해 10월 말, 시드니 올림픽 축구 예선 취재를 위해 상하이를 찾았다. 8만 명을 수용하는 이 구장에서 한국팀은 중국인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이동국의 동점골로 무승부를 기록해 올림픽 진출이 거의 확정됐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톈진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오후 3시경 어렵사리 암표를 구해서 탄 톈진행 기차는 이틀 후 새벽에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완행열차였다. 표를 구한 후 바로 기차를 탔기에 톈진에 있는 아내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다. 당시는 이동전화가 없어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지루한 여행을 마치고 톈진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그때는 신혼 2개월째였기에, 상하이발 열차가 도착하는 시간마다 역에 나와 내가 오나 안 오나를 확인했고, 중국어가 서툰 내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때도 급행열차가 있었지만 빨라야 20시간 전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