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가 6월 15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로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박근혜 수첩인사'의 특징은 '박정희 인맥'과 '올드 보이'의 귀환으로 요약된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당선인의 첫 인사는 윤창중이었다. 직제에도 없는 '당선인 수석대변인'에 기용된 윤창중은 첫 브리핑에서 옆구리에 <월간 박정희>를 끼고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 꿴 인사의 첫 단추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문창극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지낼 때 이사로 일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특보단장이었다. 이병기 후보자는 당시 이회창 후보 정치특보였다. '올드 보이'의 귀환은 박 대통령에게 심리적 위안과 안정감을 줄지 모르지만, 국민에게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대한 부패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 범죄를 가리키는 2002년 '차떼기'의 추억이 그것이다.
'차떼기'는 본디 '차'(車)에 무리를 나타내는 '떼'와 어미 '기'가 붙어 만들어진 합성어다. 사전적 의미는 '화물차 한 대분의 상품을 한꺼번에 사들이는 일이나 흥정'을 뜻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선 차떼기의 의미를 '화물차 한 대분의 만원권'(당시는 오만원권이 발행되기 전)으로 바꿔 놓았다. 그 중심에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핵심 측근인 최돈웅 한나라당 재정위원장과 서정우 대선후보 법률특보, 그리고 LG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있었다.
'올드 보이'의 귀환에 따라온 '차떼기'의 추억당시 불법 대선자금의 '입구'와 '출구'를 파헤친 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의 수사기록과 재판 기록을 검토해 보면, 명실상부한 '차떼기'에 부합된 불법자금에 관여한 3인방은 최돈웅과 서정우, 그리고 강○○ LG 구조본부장이다. 검찰 수사기록과 재판 기록을 통해 당시의 범죄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2002년 10월 말~11월 초 최돈웅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30층에 있는 강 본부장(사장급)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전에 방문 목적은 알고 있던 터였다. 최 의원은 자신이 LG의 후원을 맡았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기업의 '후원'은 '선거자금'을 의미했다. 최돈웅은 액수를 특정하지 않았다. 다만 "예년의 후원 규모와는 단위를 달리하는 규모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본부장은 '접근하는 방식의 대담성'에 크게 놀랐다. 초면인데 전화 한 통화 하고 찾아와선 '단위를 달리하는 규모'를 요구한 것이 그랬다. 당황스러웠다. LG그룹의 정당 공식후원금 규모부터 알아봤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98년 0원, 99년 5억 원, 2000년 1억 원, 2001년 10억 원 등 총 26억 원을 한나라당에 전달했다. 이에 비해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는 2001년까지 146억원을 지원했다. 차액이 120억원으로 '언밸런스'했다.
퍼뜩 1997년의 경험이 떠올랐다. LG는 IMF 긴급구제금융을 초래한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1997년 대선에서 민주당을 외면했다. 이후 1998년 대기업 빅딜 과정에서 LG반도체를 빼앗긴 아픈 상처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회창 대세론'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당초에는 올해 상반기에 후원금 집행을 미뤘다가 하반기에 30억 원을 집행할 계획이었다. 강 본부장은 '단위를 달리하는 규모'를 100억 원대로 추산했다.
구조본은 계열사 지분 포트폴리오를 관리했다. 각 계열사 공통의 이익을 위해 해야 할 일, 예를 들어 각 계열사들이 공식 후원금을 얼마씩 분담할지를 정하는 것도 구조본부장의 몫이었다. 강 본부장은 구조본 산하 재무관리팀의 이○○ 상무에게 현금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