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5년 7월 23일, 박인수 사건의 무죄판결을 보도한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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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를 울려주는 봄비…"를 열창했던 가수 박인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1955년에 '한국판 카사노바 사건'으로 장안을 발칵 뒤집어놨던 바로 그 박인수다.
그는 수십 명의 부녀자를 농락한 죄로 법정에 섰다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자신과 만난 많은 여성 중 결혼하지 않은 이는 딱 한 명뿐이라는 진술이 크게 참작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판결문에서 나온 유명한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법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해준다'라는 것.
당시 그는 해군 대위를 사칭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사건 이후로도 유사한 '사칭'(詐稱) 사건이 이 땅에서 빈번하게 벌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박인수의 '해군 대위' 사칭은 가난한 법대생이나 사법연수원생, 재미사업가, 재벌 아들, 연예기획사 사장 등을 사칭하는 가짜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하는 여성 또한 부지기수였다.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배경에는 욕심과 허영심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사칭'은 가짜를 진짜로 포장하는 일이다. 거짓을 진실로 위장해 상대를 속이는 행위다. 카사노바 박인수는 백수건달이라는 진실을 숨겼다. 가짜이자 거짓인 해군 대위 행세로 수많은 부녀자들의 환심을 샀다.
당시 박인수가 백수건달 신분을 그대로 밝혔다면? 어느 여성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수없이 양산된 각종 '사칭' 사건만 봐도 그렇다. 명문 대학 법대생으로 위장해야 했고, 재미사업가 따위를 사칭하면 만사가 술술 풀린다.
확실히 편리한 '가짜' '진짜'나 '정직'을 견지했다가는 눈앞의 실익을 놓치기 쉽다.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짜나 거짓은 정반대다. 확실히 편리하다. 많은 이익을 손쉽게 낼 수 있다. '짝퉁' 제품을 양산하면 적게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지금도 그런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짝퉁으로라도 허영심을 채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칭에도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문득 노래 한 곡이 떠오른다. 1993년에 가수(?) 신신애가 춤바람 난 두메산골 이장 사모님처럼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 <세상은 요지경>이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야이야이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인생살면 칠팔십년 화살같이 속히 간다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싱글 벙글 싱글 벙글 도련님 세상방실 방실 방실 방실 아가씨 세상영감 상투 삐뚤어지고할멈신발 도망갔네 허~이 노래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짜가'가 판을 치는 세상 탓이었으리라.
우리는 왜 '짝퉁'들에게 쉽게 속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