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조어대 국빈관외국 정상이 오거나 주요한 회의가 열린다. 6자회담도 대부분 이곳에서 열린다
조어대
중국인들에게 댜오위타이는 너무 익숙한 말이다. 중국에서 외국사절을 영접하는 대표적인 국빈관의 이름으로 베이징 서부에 자리한 국가의 주요시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의 명칭은 댜오위다오에 있는 섬에서 따온 것이라기 보다는 주문왕을 도와 패업을 이룬 강태공이 낚시를 했다는 장소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게 더 맞다. 또 전국시대 도가의 창시자인 장주(庄周)가 낚시를 했다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측면이 있지만, 일단 명칭이 같은 이상 중국 국민들이 이 사건으로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댜오위다오를 두고 사건이 일어난 것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 해가 남달랐던 것은 이런 명칭이 주는 파장도 컸던 게 사실이다. 이후에도 중일간의 분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다. 일본은 섬 한 곳을 국유재산에 등록했고, 4월에는 일본 관방장관이 이곳의 국유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중국이 이곳 인근에서 실탄 훈련을 실시했으며, 8월에는 중국 25개 대도시에서 반일 시위가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됐다.
9월에는 80개 도시로까지 반일시위가 확산되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산 차에 대한 노골적 공격도 일어났다. 9월에는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말했지만 일본과 대만 순시선이 해상에서 물대포 공격을 주고 받는 등 충돌이 벌어졌다.
댜오위다오는 일본 오키나와 서남쪽 400킬로미터, 중국 동쪽 350킬로미터, 대만 북동쪽 190킬로미터에 위치한 6.32평방킬로미터의 크지 않은 섬과 암초로 되어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단순한 섬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섬을 소요하는 국가는 인근 해상경계선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나라의 국제전략에서 더 없이 중요하다.
일본과 미국은 해안선 확대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양 진출을 제어할 수 있는 전략적 가치에 대해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외화 대부분을 일본에게 제어당하는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얻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 섬은 일본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안길 수 있다. 우선 이 섬의 문제 뿐만 아니라 원래 유구국으로 불렸던 오키나와 지역의 영토문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구국은 중국의 왕조들은 물론이고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와 교류하던 독립국가였다. 명대에도 책봉국으로 중국과 깊은 인연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시대부터 일본의 침입을 받기 시작하다가 1879년 일본으로 강제 병합되어 멸망했다.
이 시기는 일본이 명확하게 제국주의적인 의지를 가진 시기로 국제 평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오키나와는 다시 유구국으로 독립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럴 경우 일본은 물론이고 이곳을 주요 전략기지로 쓰는 미국조차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중국도 이런 역사적 상황을 간과할 수 없었다. 특히 동중국해에 광범위하게 퍼진 심해자원을 확보하고, 대양으로 나가는 길을 열기 위해서 드물게 일반인들의 반일시위를 묵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