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마을 어귀밀양 상동면 여수마을 위귀 모습.
정대희
'정(情)'을 나누던 사이가 적이 됐다. 인심이 좋기로 소문난 동네는 의심이 가득한 마을로 변했다. 송전탑 건설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경남 밀양의 이야기다. 송전탑 건설공사 인근 마을들의 공동체 붕괴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언뜻 보면 여느 평범한 시골 마을 같지만, 동네 깊숙이 들어가면 지역·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다.
밀양시 부북면의 A(53)씨는 이 같은 상황을 "시한폭탄을 껴안고 사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마을마다 긴장감이 팽배하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갈등의 불씨는 한전의 개별 지원금이다. 송전탑 건설공사에 합의한 지역을 중심으로 개별 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지역·주민 간 분열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한전은 송전탑 건설에 합의한 밀양 5개면에 총 185억 원의 보상금을 지원했다. 이중 주민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개별지원금은 40%인 74억 원이다.
74억 한전 지원금 불똥, 이장에게?송전탑 건설 반대에 합의한 주민들을 "한전 놈한테 돈 받아 처묵은 놈(밀양시 부북면 A(72) 주민)"과 같은 말로 비난한다. 반면, 합의안을 제출한 주민들은 반대 주민들을 향해 "보상금 더 받으려고 하는 수작일 뿐(밀양 청도면 요고리 B(52) 주민)"이라고 헐뜯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송전탑이 세워질수록 주민들은 사분오열됐고, 마을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웃으로부터 비롯된 마음의 상처는 방치되고 곪아갔다. 결국, 양측이 주장하는 '건강권과 사유재산권,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는 의견과 '송전탑 피해 없다, 정부서 하는 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서로의 입장 차이만,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주민 갈등은 마을 이장 선출 과정에서도 표출됐다. 지난 5일,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마을총회를 열어 새로운 이장을 선출하려 했으나 유예되었다. (관련기사 :
'송전탑 반대 중심' 밀양 부북면 위양리, 마을이장 선거는?)
요지는 이렇다. 송전탑 반대 성향의 이장이 마을이장 임기가 끝났으니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현 이장이 관행대로 차기 이장을 선출할 때까지 이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공사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이장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 마을은 정반대 경우다. 지난해 10월 한전은 이 마을과 보상안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반대 대책위원회도 주민 회의를 거쳐 해산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이 마을은 주민 회의를 통해 이장을 해임하고 송전탑 건설공사를 적극 반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합의안에 동의하도록 했다"며 새로운 이장을 선출하는 데 합의했다.
주목할 것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 마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송전탑 반대 대책위 관계자는 "마을마다 찬반이 심해 마을 이장 선출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로 어울려 돕고 살던 동네가 송전탑 문제로 뿔뿔이 흩어져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가장 힘든 점은 우리 마을주민하고 싸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