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 창고(store)로 쓰던 곳을 개조해 지난 2000년 문을 열었다.
이주빈
그들의 표현처럼 "이 모든 이야기는 한 장의 계약서에서 시작"한다. 1759년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는 더블린시와 가동이 중단된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St. James Gate)에 있는 한 양조장을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임대 기간은 무려 9000년이었고, 계약금 100파운드에 해마다 사용료 45파운드를 내는 조건이었다.
아무리 가동이 중지된 상태였지만 4에이커에 이르는 부지에 방앗간과 마굿간, 200톤의 건초를 저장할 수 있는 헛간 등이 딸린 양조장이었다. 특히 임대 조건에는 술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질 좋은 물을 9000년 동안 맘껏 이용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횡재나 다름없었다.
이런 조건이면 특혜 시비에 휘말렸을 법한데 실상은 전혀 딴판이었다. 되레 더블린시는 아서 기네스가 마음을 바꿀까 걱정했다. 양조장이 있던 자리는 리피강 둔치 옆 늪지대로 흉가로 변한 양조장은 처치하기 곤란한 골칫덩어리였다. 사려는 사람은커녕 공짜로 줘도 사용하겠다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임대해서 사용하겠다고 하니 더블린시 입장에선 아서 기네스는 구세주와 같았다.
아서 기네스와 더블린 시가 체결한 계약서는 아일랜드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라틴어로 작성되었다. 한 관광안내자는 "아서 기네스의 변심을 우려한 더블린시가 영구적으로 양조장을 처리하기 위해 그가 알아먹지 못하는 라틴어로 계약서로 썼다"고 말했다. 물론 흥미를 위해 꾸며낸 얘기다.
아일랜드는 가톨릭의 영향이 그 어느 나라보다 크다. 수도사들은 기독경전을 라틴어로 기록하는 작업을 했고, 학교에선 라틴어를 정규 과목으로 가르친 나라다. 라틴어는 아일랜드에서 종교언어이자 권세가들의 고급 사교언어였다. 양조장을 임대할 정도의 재력과 권세가 있던 아서 기네스와 더블린시 측이 라틴어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당시 아일랜드에서 라틴어가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계약을 마친 아서 기네스는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St. Jamess's Gate Brewery)'을 설립해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맥주의 재료는 보리, 호프, 이스트, 물 등 네 가지. 이 맥주가 바로 기네스다. 기네스는 현재 약 150개 나라에서 매일 1천만 잔 이상이 팔리고 있는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다.
기네스는 기타 첨가물을 넣지 않은 보리 발효맥주(에일 Ale)다. 기네스의 상징색이 되어버린 매혹적인 검은색은 구운 보리를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빛깔이다. 보리를 볶아 만든 보리차의 빛깔이 검붉은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