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에 모여밀양 산외면 골안마을 주민들은 매일 오전 6시면 마을 어귀에 모닥불을 지핀다.
정대희
"밴함없이 또, 나왔네.""하하하."모닥불 앞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다. 새벽공기가 차다. 어둠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오늘도 어르신들은 한 손에 쥔 지팡이에 의지해 집을 나선다. 100일 넘게 반복된 경남 밀양시 산외면 골안마을 주민들의 일상이다.
[18일 오전 6시] 송전탑 건설 공사에 반대하는 골안마을 주민 10명이 마을 어귀에 모였다. 송전탑 건설 공사를 위해 산으로 가는 인부들을 막기 위해서다.
불 쬐던 한 할머니가 허공을 향해 묻는다.
"오늘은 연대하는 사람 없나?" 대답 대신 침묵이 흐른다. 옆에 앉은 어르신은 계속 지팡이를 부지깽이 삼아 연신 모닥불만 뒤적거린다.
침묵을 깨고 털모자를 눌러 쓴 할아버지가 말했다.
"저 너머 아들내미 크게 다쳤다며. 뱅원서 수술했다카데." 곁에 있던 할아버지가 모닥불을 바라보며 답한다.
"모르겠습니더. 와 다쳤다는디요."[오전 6시 45분 즈음] 봉고차 한 대가 모닥불 근처로 다가왔다. 잽싸게 한 할머니가 길목을 막는다.
"어데서 왔는데여. 갱찰이고만. 갱찰이 뭐하라꼬 이기까지 올라 오는교. 만날 저 밑까지만 와서 동태 살피더만. 빨리 차 돌려 가삐소. 한전 놈들 올라카나는가베."어르신들은 불빛에 애민하게 반응했다. 산 밑에서 반짝이는 빛을 주시하며, 언제 즈음 송전탑 건설공사 인부들과 경찰이 올까 노심초사했다.
[오전 7시 즈음] 이제 막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농로에서 소대규모의 경찰무리가 마을로 올라왔다. 쪼그려 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일어나며 말했다.
"한전 놈들 올라나 보다. 갱찰 온다." 불쏘시개로 이용하던 지팡이를 내딛고 어르신들이 공사현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향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할아버지가 외친다.
"한전 놈들아 물러가라. 갱찰은 왜 한전 놈들 편이가!"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찰이 어르신들과 마주한다. 그 뒤로는 40여 명 정도의 경찰이 줄을 맞추어 서 있다. 인부들은 경찰 뒤편에서 헬멧과 가방을 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