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준비하면서 어쩌면 어른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많은 것들을 나와 곰씨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거나 생략했다. 사진은 <응답하라 1994>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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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준비하면서 어쩌면 어른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많은 것들을 나와 곰씨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거나 생략했다. 예물은 곰씨 부모님이 결혼하실 때 맞추셨던 것을 재가공했고, 예단은 양가에서 오고 가는 것 없이 각자 집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폐백도 하지 않기로 했고, 이바지 음식도 생략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고, 결혼식 입장은 양가 어머니-양가 아버지-신랑·신부 순으로 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먼저 결혼한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견례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주고 받지 말자', '간소하게 하자'고 서로 합의해 놓고서는 나중에는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좀...', '혹시나 내 자식이 기죽을까 봐'라는 이유로 한쪽에서 뭔가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럼 다른 한쪽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결국에는 남들 하는 만큼 하게 된단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 모두 "너희들 좋은 대로 하라"며 우리 두 사람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시기는 했지만, 속으로 왜 아쉬운 마음이 없었겠는가. 아마 주변에서 '이건 빠지면 안 되지', '그건 꼭 해야 하는 거야'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으리라. 결혼 준비하면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엄마 친구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결혼식을 일 주일 정도 앞두고, 어른들은 이바지 음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오셨다. 예단도 폐백도 안 했는데 이바지 음식까지 안 하면 너무 정이 없는 것 같다며. '그래, 웬만한 건 다 우리 마음대로 했는데 이바지 음식 정도는...'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도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한 친구는 신혼여행 다녀와서 고기랑 과일 같은 것을 이바지 음식으로 가져갔는데 시어머니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단다. 그게 마음속 상처로 남은 친구는 드라마 같은 데서 이바지 음식이 나올 때마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제대로 할 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결혼하면서 되도록 부모님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한쪽에서 뭔가를 하면, 거기에 맞춰서 다른 한쪽도 뭔가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무리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예단도 그런 이유로 안 한 건데 이바지 음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면서 부모님을 설득했다.
결국 이바지 음식은 우리 집에서는 떡을, 곰씨네 집에서는 떡과 강원도 더덕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떡과 더덕은 신혼여행 다녀와서 식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맛있게 먹었다. 떡 정도는 크게 부담될 것도 없고, '정'을 나눌 기회는 앞으로도 많으니까.
기존의 틀 깨기, 쉽지 않구나 우리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다. 다른 사람들 결혼식에 갔을 때 주례 선생님 말씀을 귀담아들은 적은, 미안하지만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례사 시간은 하객들의 잡담 데시벨이 가장 높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한다고 하자, 우리 집은 요즘은 그렇게들 많이 한다며 반겼다. 우리는 주례가 빠진 시간을 나와 곰씨 그리고 부모님이 채웠으면 했다. 그래서 예비 시아버지께는 하객들에게 인사말을, 우리 아빠에게는 축하 편지를 부탁했다. 엄마에게 미션을 전달했고, 아빠는 편지지를 사 와서 '집필'에 들어갔다고 했다.
반면, 곰씨네 부모님은 "주례 없는 결혼식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며 많이 당황하셨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시다니 그럴 만도 하다. "주말에 근처 결혼식장 가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와야겠다"는 아버님 말씀을 들으며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결혼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생략했지만, 결혼은 양가 부모님만의 일이 아니었다. 순진하게도 나는 예단을 양가에서 각자 부담하니까 비용도 비슷하게 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공평한 거라고. 그런데 우리나라 '전통'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남자 쪽이 더 챙겨야 할 가족이 많았다. 아들이 결혼할 때는 집안 대부분의 가족을 챙겨야 하고, 딸은 그렇지 않단다.
그런데 우리 집도 부산에서 버스를 전세하다 보니 그 부담이 또 만만치 않았다. 엄마가 별말을 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하나하나 따로 준비하느라 부산 가족들이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기존의 틀을 깨고 싶고,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결혼식을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겁먹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