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근으로 아일랜드를 떠나던 이들이 배를 타던 더블린 부둣가에 한 어린 자매가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이주빈
아일랜드 대기근의 원인은 겉보기엔 주식으로 재배하던 감자에 마름병이 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과 영국인 지주들의 악랄한 착취 때문이었다.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외에도 밀과 옥수수 등 각종 곡식이 많이 재배됐다. 하지만 감자를 제외한 나머지 곡식들은 모두 영국이 수탈해갔다. 감자 외엔 먹을 것이 없었던 차에 감자 마름병이 번지자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악랄했던 영국인 지주들은 먹을 감자조차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일랜드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강요했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란 이름으로 한 나라를 이루고 있었기에 영국 왕실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영국은 이를 싸늘히 거부한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은 다른 나라의 식량 원조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영국 그리고 영국 왕실, 영국인에 대한 한에 가까운 증오심이 심화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대기근의 여파는 1871년을 넘기면서 진정 기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1879년에 또다시 다른 형태의 기근이 급습했다. 감자 농사가 흉작이 되고, 영국이 미국에서 수입한 값싼 옥수수 때문에 곡물 값이 크게 떨어지자 영국인 지주들은 그 책임을 아일랜드인 소작인들에게 전가했다. 흉작에도 소작료는 악착같이 거둬갔고, 심지어 소작인들을 내쫓기까지 했다.
참다못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데빗과 파넬의 주도로 '토지연맹'을 결성했다. 토지연맹은 소작료를 줄이고 소작인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토지연맹이 구사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 바로 '보이콧 운동(boycotting)'이었다.
아일랜드 메이요(Mayo) 주에는 토지 대리인이었던 보이콧(Boycott) 대위가 있었다. 보이콧 대위는 흉작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난한 소작인들을 내쫓았다. 소작인들을 내쫓은 보이콧 대위가 다른 주민들에게 추수를 맡기려 했다. 비정한 보이콧 대위의 행태에 분노한 주민들은 토지연맹의 제안에 따라 보이콧 농장의 추수를 거부해버린다. 아일랜드 소작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지주 및 토지 대리인과 일체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보이콧' 전술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어 사전엔 '보이콧(boycott)'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새해 초입, "서울하늘 아래서 밥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2014년 신년사가 전해진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구휼(救恤)이야말로 목민관의 기본 업무"라고 했다. 백성의 가난과 굶주림, 외로움을 구제하는 일이야말로 공무(公務)를 보는 자가 마땅히 가장 앞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가난과 굶주림과 외로움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늙고 병든 이를 기꺼이 품에 안으려는 다감한 국가와 정부. 구휼은 국가와 정부의 기본 의무다. 이 기본 의무를 안 하겠다고 강짜부리는 것이 이른바 '신자유주의'. 그들이 말하는 효율성과 경쟁력은 국가와 정부의 이름만을 빌린 재벌과 대기업의 신종 사업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4대강 사업 등을 보며 이미 확인했다.
'기아 이민선'이 서러운 뱃고동 소리 울리며 떠나던 더블린 부둣가를 서성인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굶주림 때문에 모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다시 돌아왔을까. "이렇게 살바에야 차라리 이민 가고 싶다"던 벗들은 모두 평온할까.
"무엇보다 건강하시라, 그리고 아낌없이 행복하시라." 지난한 연대기에 한 줄도 안 남을 새해 인사를 대서양에 띄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