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송전탑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서종범씨
조정훈
"밀양에는 계엄령이나 다름없는 경찰 폭력으로 어르신들이 발에 치이고 고향땅 산에 올라가더라도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 하는 등 공권력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밀양은 축복받은 도시로 산천이 아름답고 천혜의 행복한 도시였지만 이제는 한전의 765kV 송전탑 공사로 헌법에서 보장된 사유재산과 생명권을 강탈당하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목숨을 끊었겠습니까? 우리는 정말 안녕하지 못하고 불행합니다."송전탑 때문에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농약을 마시고 숨진 고 유한숙씨의 분향소를 지키던 주민들이 20일 서울에 올라간 뒤에도 서종범(55)씨는 밀양에 남아 다른 할머니들과 함께 분향소를 지켰다. 서씨는 최근 대학생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쓴 대자보를 보고 "젊은이들이여 외면하지 마십시오, 외면한다고 안녕하지 않습니다"라며 젊은이들의 사회 참여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씨는 원래 밀양 주민은 아니었다. 부산이 고향으로 부산에서 나고 자라 직장생활을 20여 년 했다. 산이 좋아 젊을 때부터 우리나라의 많은 산을 다니다가 밀양에 반해서 지난 2001년 밀양시 부북면에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촌에 들어가 사는 게 쉬운 일이냐며 미쳤다고 많이 말리기도 했단다. 아이들 학교 문제며, 부산과 같은 대도시에 살다가 밀양에 가서 뭘 하면서 먹고 살 것이냐 등 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하나 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적하고 공기 좋고 교통도 좋아 마을을 찾은 친구들이 오히려 서 씨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지인이라며 마을 사람들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마을 청소도 하고 음식도 나누면서 친해졌다. 어느새 새마을지도자가 되었다. 18개월 된 핏덩어리 같은 막내딸이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서씨는 그러나 밀양이 마냥 좋은 곳이 아니었다. 서씨는 세 번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사 온 지 2년이 지난 후 대구에서 부산간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집 앞에 있는 흙을 깎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싸움이 시작되었다. 집 앞에 도랑이 있는데 흙을 깎는다면 길이 끊기고 산사태가 나서 집이 위험할 것 같았다. 서 씨는 시공사와 싸웠지만 결국 땅주인에게 3000만원이 건네졌다. 땅주인은 50만원씩 나눠주고 1000만원은 마을 발전기금으로 넣었다. 이후 집 근처에 7000평을 또 깎으려 했으나 완강히 반대했고 마침 산지관리법이 바뀌면서 주택에서 200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허가가 나지 않아 결국 무산되었다.
3년 전에는 집 근처에 밀양시가 공장 허가를 내주었다. 선박 블록을 만드는 공장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부동산 업자가 땅을 투기용으로 매입해서 팔려는 것이었다. 서씨는 밀양시장을 찾아가 따지기도 하고 밀양시 게시판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경남도청에도 민원을 제기하고 계속해서 문제를 삼았더니 문화재관리법을 적용해 결국 공장허가가 취소되었다. 두 번째 싸움이었다.
이번에는 세 번째 싸움이다. 송전탑이 집 근처를 지나가는 것을 알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 만 2년이 넘었다. 서 씨의 집에서 송전탑 하나는 500미터, 하나는 800미터 떨어져서 지나간다. 도시 시람들은 휴대폰 전자파 하나에도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곳에서 살다가 병에 걸려 죽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앞섰다. 2년 전 농지 700평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가격은 자꾸 내려가고 팔리지는 않았다.
대신 마을은 송전탑을 찬성하는 주민들과 반대하는 주민들로 나뉘었다. 마을에서 송전탑을 적극적으로 찬성한 사람들은 마치 한전 직원이라도 된 듯이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한전에서 공짜 돈 주는데 왜 받지 않느냐는 등 여론몰이를 하고 다녔다.
한전에서 내민 서약서에는 보상금을 지급한 이후에 어떠한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은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도장을 찍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서 씨는 돈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양심을 팔기는 싫었다. 서약서의 내용대로라면 암이 발생하거나 집값이 폭락해도, 산사태가 발생해도 일체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한전에서는 마을주민 70%가 찬성했다고 하는데 전혀 민주주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회유를 해서 동의서를 받은 것이지요.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매수를 한 것이지요. 마을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밀양시장은 8년 전에는 송전탑 반대했다"